우리가 결국 다다르지 못한 문장 하나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쉬워져 버렸다고 생각한 적 있다.
너무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은 방식으로 그 단어를 소비했고, 그래서 나도 한동안은 '사랑해'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들을 찾아 헤맸다. 고맙다는 말로, 수고했다는 말로, 늦은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건네는 안부로.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의 뿌리는 결국 하나였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은 누구에게도 흉내 낼 수 없고, 어디에도 빌려줄 수 없는 나만의 언어였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걸게 된다. 부끄러움도, 조심스러움도, 나 자신을 드러내는 두려움까지도. 그래서일까, 끝내 말하지 못한 고백은 마음속에서 썩지 않고 발효되어 오히려 더 향기롭고 애틋해졌다.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몇 글자 모자란 사람이었고, 당신의 눈빛을 바라보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당신과 함께 보낸 계절은 참 고왔다. 꽃이 피는 봄이었는지,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는지 이제는 분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계절보다 더 짙은 감정을 우리가 함께 견뎌냈다는 것이다. 그 계절 안에는 침묵으로도 전해지던 마음이 있었고, 서로의 손을 잡지 않아도 느껴지는 체온이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지나가면 추억이라고. 하지만 내게 당신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우리가 끝내 다다르지 못한 문장 하나가 있다. 너무 늦게 꺼낸 말, 너무 일찍 접어둔 마음, 그리고 아직도 쓰이지 않은 진심. 나는 그 문장을 써 내려갈 용기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아가고 있다. 언젠가 당신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읽어내릴 수 있도록.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며 당신을 그리워하겠다. 말 대신 문장으로, 눈물 대신 잉크로.
그러니 당신도, 혹시 어디선가 이 글을 마주하게 된다면 한 번쯤은 멈춰 서주기를. 내가 당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조용하고도 오래된 것인지를. 단 한 번만이라도, 천천히 읽어주기를.
사랑은 고백보다 기다림에서, 말보다 행간에서 자라나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내가 드러내지 못한 수많은 표현은, 어쩌면 당신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모른 체 해준 그 많은 순간들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당신을 향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나는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닿고 있는 것 같다. 침묵을 견디며 쌓아온 그리움은 단어 하나하나에 배어 있고, 그 모든 문장이 모여 당신이라는 존재 앞에 다다른다. 부디 이 모든 마음이 당신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만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