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잃은 그 자리에서 피어난 것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깊은 어둠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말했지만,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그저 익숙해지게 만들 뿐이었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마음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었다.
슬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법을 배웠을 뿐이었다.
당신이 남긴 말들이 자꾸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괜찮을 거야”라는 짧은 위로, “고마웠어”라는 인사, 그리고 그 침묵까지. 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휩쓸었다. 나는 그 안에서 버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야 했으니까. 그렇게 하루를 쌓고, 계절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세워갔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꽃이 피어 있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었고, 일부러 가꾼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뿌리내린 생명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나는 문득 그 꽃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나도 모르게 그리움의 자리에 무엇인가 피어나고 있었구나. 그것이 회복인지, 용서인지, 아니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랑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 꽃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당신을 잃은 자리에 꽃을 심는다. 피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이 마음은 이제 누군가를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을 향해 무릎 꿇지 않고, 대신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한다. 당신의 평안과 나의 회복이 함께 깃들기를, 그렇게 다시 봄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