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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당신이라는 싯점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by 마르치아
사랑이 떠난 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이별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어쩐지 낯설고 무거웠다. 매일 같이 나누던 인사, 사소한 대화, 함께 걷던 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나면,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내 안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그 달라진 풍경을 견디는 것이, 이별이라는 감정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자리를 허둥지둥 무언가로 채우려 했다. 바쁜 일정, 새로운 사람들, 잊기 위한 노력들로 하루를 덧칠했지만 이상하게도 더 공허해졌다. 텅 빈 마음이 무엇인가를 원했지만, 그것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다시 껴안고, 다시 나로 살아가겠다는 작은 약속이었다. 그 자리엔 누가 아닌, 나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방황해야 했다.




어느 날 오후, 창밖의 나무가 부는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회한도 아닌 어떤 명확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눈물이었다.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그 삶 속에서 여전히 나를 지켜내고 있었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도 빛은 들었고, 바람은 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사랑이 내게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 사랑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했다. 내가 누구였고, 무엇을 견뎌냈는지 기억하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온기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을 품는 온도를 배워가고 있다. 그리움은 여전하지만, 그리움 속에서도 나는 살아간다. 어쩌면 더 단단하게, 더 다정하게.



이제 나는 이 자리에서 조용히 인사한다. 사랑이 떠난 그날로부터, 나는 나를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사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고요하고 따뜻한 나의 세계에 조금 더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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