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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당신이라는 싯점

사랑이란 이름이 내게 가르쳐 준것

by 마르치아
사랑은 언제나 이름보다 먼저 마음을 건넨다.




처음엔 그저 따뜻한 온기였고, 마주 앉은 눈동자 속의 빛이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 하나로 얼마나 많은 세계를 건너왔는지 모른다. 모든 처음은 낯설고 아름다웠고, 나는 그 설렘을 붙잡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나 사랑은 나를 오래 보호해주지 않았다. 사랑은 머무르기보다 흐르기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을 마주해야 했다. 사랑이 물러난 자리에는 침묵과 후회, 그리고 서서히 익어가는 성숙이 남았다. 사랑이 나에게 처음 가르쳐준 것은, ‘모든 관계는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함께 가르쳐주었다.




이별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식히고, 사랑은 말보다 먼저 다정해진다. 나는 당신의 말보다 눈빛을 기억하고, 손끝의 떨림보다도 그 침묵의 무게를 오래 안고 살았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말이 아닌 마음으로 살아가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겪은 어떤 고통보다도 더 깊은 자국을 남겼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국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나는 한때 사랑이 전부라고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스스로를 던질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끝내 나를 나로부터 꺼내어,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누군가를 품는다는 건 곧 나를 더 넓히는 일이었고, 그 넓어진 마음의 자리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사랑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 애쓰다 보니 나 자신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졌는지,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나는 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울었고, 잊지 않으려 했지만 잊었고, 그리고 결국엔 다시 웃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며 사랑은 내게 ‘괜찮다’는 말을 가르쳐주었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고, 조금 늦어도 괜찮으며, 상처를 안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



사랑은 무엇보다 나를 내 편이 되게 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던 나에서, 나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나에게 말 걸기 시작했다.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다정함이었다. 지나간 사랑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사랑에게도, 그리고 매일 아침 눈 뜨는 나 자신에게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이 문장을 마무리한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 배우고, 남긴 것을 품고, 여전히 사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그저, 더 다정한 방식으로 나를 살아가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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