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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 피정

초대합니다

by 마르치아


우리가 알고 있는 ‘현관’은 원래 불교의 용어다. 모든 집을 통과할 때 처음 만나게 되는 곳, ‘깊고 묘한 이치에 드는 관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참선으로 드는 어귀이자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첫 문. 그러니 누군가에게 받는 초대란 단지 식사나 만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로부터 깨어남으로 향하는 거룩한 부름이다. 천주교 신자는 집에 초대를 받으면 현관을 들어서며 이렇게 인사한다. 이 집의 평화를 빕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화를 위하여 인사하라는 복음 말씀처럼 현관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그 집과 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는 축복의 입구다.




처음에는 신부님과 선배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만의 조촐한 피정이었다. 서로가 열심히 살아온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작은 여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선배의 유스호스텔엔 이미 장기 숙박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이들 모두를 초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숲 피정은 예정에 없던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냉동실에 있던 도미와 보리멸 뱅에돔과 쏨뱅이를 챙겨 신부님과 함께 장을 보고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선배는 우리를 뜨겁게 안아주며 반가워했고 나는 생선을 손질하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테이블보를 깔고 누군가는 야생화를 작은 유리병에 꽂아 넣었으며 우리 모두는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도왔다. 신부님은 해먹 텐트와 불멍 난로를 가져오셨고 우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밤을 준비했다.




요리가 어느 정도 마쳐지고 나는 신부님께 바비큐 준비를 요청했다. 내가 주워온 솔방울로 불을 피웠고 도미 탕수의 접시는 은빛 접시에 푸짐히 담겼다. 격자로 칼집을 낸 참돔에 전분을 입혀 중온의 기름에 서서히 튀기고 레몬과 야채로 만든 소스를 붓고 파채를 올린 뒤 끓는 기름을 부어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요리였다. 사람들의 침샘은 동시에 반응했고 식탁은 작지만 풍성한 연회가 되었다.




참돔을 해체하고 나누어주는 손길에 나는 분명히 축복이 머물고 있음을 느꼈다.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누구랄 것 없이 서로 맛있는 부위를 양보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거렸다. 그 식탁 위의 음식보다 그걸 바라보는 눈빛과 손끝의 배려가 더 따뜻했고 우리는 그날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사랑의 순서를 떠올렸다.




저녁이 깊어지자 바람은 숲속을 헤매다 식탁까지 내려왔다. 나무들은 우리를 축복하느라 자주 서걱거렸고 나는 그 서걱거림을 귀가 아닌 영혼으로 들었다. 그것은 바람의 말이었고 자연의 기도였고 우리가 초대한 이 자리가 하늘로부터 다시 초대받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그 순간 문득 나는 최후의 만찬이 떠올랐다. 손을 모으고 기다리던 이들과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을 양보하던 그 마음이 지금 내 눈앞의 풍경과 겹쳐졌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오늘 이 식탁도 하나의 성찬이었다는 것을. 피정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사랑과 나눔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잔에 술을 채우고 조용히 건배를 제안했다. 그동안 나눴던 웃음과 기쁨이 잔 위에 반짝였고 우리들은 이미 주님이 초대하신 그 식탁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와인은 성혈이 되었고 고기는 생명이 되었으며 누군가의 눈빛은 기도가 되었다.




이어서 바비큐가 구워졌고 나는 고기 먹는 순서를 알려드리며 유자폰즈와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작은 접시에 담아 하나씩 나누어 드렸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성체를 분배하는 마음 같았다. 정결한 손길로 건네는 그 소스 한 스푼 한 스푼이 기도와 같았고 받는 이들의 눈빛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조용히 2차를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축하받을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분은 생신을 맞으신 분이었고 나는 암을 건너온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일이나 회복의 기념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경이로운 감사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잔을 들었고 불빛은 잔 위에 맺힌 술방울에 반사되어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생신을 맞으신 자매님은 내게로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조용히 나를 안아주셨다. 그 포옹은 말보다 더 깊었고 그 눈물은 노래보다 더 따뜻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피정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이 숲의 밤은 그렇게 기도로 시작되어 사랑으로 봉인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그날의 식탁 나무들의 서걱거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들을. 그리고 나는 안다. 그 피정은 단지 시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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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삶을 살며 내 존재 전체를 열어 누군가를 초대하려 한다. 초대받는 이들이 조금은 따뜻해지고 조금은 살아 있음에 안도하며 자신의 빈 그릇을 내어놓게 되기를 바라며 그 강한 깨달음은 주님이 내게 주신 은총이었다. 나는 삶으로 이 피정을 연장하려 한다. 끝이 없는 초대 사랑의 식탁 그리고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느리고 아름다운 순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