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에 대하여

어머니기일44주년

by 마르치아


올해로 어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신 지 마흔네 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이유로 나는 빨리 철이 들었다. 해마다 조촐하게 상을 차려 드렸으나 몇 해 전부터는 따로 상을 차리지 않고, 그 대신 어머니의 기일이 되면 단식을 하며 어머니의 죽음에 조용히 동참한다. 어머니는 수없이 굶은 날이 부지기수였고, 중풍을 앓고 계신 허약한 몸에 굶기까지 더해져 결국엔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 내 가슴에는 대못 하나가 깊숙이 박혀버렸다. 어느 누가, 어떤 문장이 그 황망한 죽음을 대신하랴.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 빈곤과 정지된 생명의 회색빛을.


마지막 나는 그 방에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신께, 오월의 더운 어느 날 무릎을 꿇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도란 것을 했다. 제발 어머니의 고통이 멈추게 해달라고, 그만 어머니를 거두어 가셔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그것이 희망인지 체념인지 모를 기운이 방 안을 감쌌고, 눈을 떠 어머니를 보니 얼굴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눈코입,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사실 매일 보아왔지만, 유난히 그날 그 순간은 이질감과 공포로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나는 그 방을 뛰쳐나왔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 댁으로 갔다. 밥을 굶은 걸 눈치 챈 아주머니는 밥상을 차려주셨지만, 멀리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옆집 호동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순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직감했다. 집으로 뛰어가는 내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구름 속을 제자리에서 돌며 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방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정지된 흑백의 화면처럼, 그 방의 공기와 숨결이 멈춰 있었다. 어머니는 앉은 채로 엎드려 있었고, 옆에는 호동 오빠가 떠다 드린 물컵이 놓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보았다. 이미 동공은 열려 있었고,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눈을 감겨 드렸다. 말라붙은 입가엔 하얗게 굳은 소금이 있었다. 얼마나 나를 부르셨을까, 그 입가의 흔적을 조심스레 닦아내고, 어머니의 입꼬리를 조심스럽게 올려드리고, 천천히 눕혀 드렸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슬픔보다 놀라움이었다. 신이 정말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 그토록 즉각적으로 응답이 왔다는 사실에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핏자국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방을 정리한 뒤에야 나는 이웃 아주머니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끔찍하게 기억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수습해두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까지 울지도 않았다. 오직 ‘어머니의 죽음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오셨을 때 비로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건 사람의 울음이 아니었다. 절망과 절규로 뒤엉킨, 어린 짐승의 소리였다. 내 깊은 속에서 묵직하게, 뜨겁게, 한없는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그 굉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절규,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스러움, 왜 내 기도는 그렇게도 빨리 들어주셨는지 모를 원망이 지축을 흔드는 굉음처럼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 인간의 모성, 어머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근원이자, 치유이자, 돌아갈 회귀의 고향이자, 젖줄이자, 가나안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정말 먼지만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비참해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 이후, 모든 회귀는 내가 나에게 돌아와야 했고, 모든 치유 역시 누군가의 품이 아닌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그 고독의 출발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그 나침반으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정한다. 살면서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목적을 잃어버릴 때, 나는 그 나침반을 꺼내든다. 그 먼지만큼 작아진 내 자아조차도 결국은 내가 인정해 주고, 내가 알아주어야 하는 것임을, 나는 체험으로 알고 깨달아야 했다. 그것이 고독이었다. 인간의 근원적인 원형의 모습. 그러나 그 고독이 나를 살게 했고, 무너질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스스로의 단단한 품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품을 다른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자리로, 또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으로 쓰려고 한다.


해마다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오면 나는 단식을 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전의 시간에 잠시나마 동참하며, 어머니의 마지막을 기억하고자 한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울음은 지나갔고, 이제는 기억으로, 사랑으로, 다시 살아낸다.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훨씬 더 말랑해졌다. 너무 아파서 무뎌질 줄 알았던 마음이 되레 부드러워졌다. 나는 내 안의 원형을 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이 많던, 누구보다 어떤 사람보다 사랑이 많았던, 내 어머니를 나는 오늘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했던 그날의 슬픔을 오늘의 다정함으로 바꾸어 살아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상처 곁에 조용히 앉을 줄 알고, 누군가의 침묵을 들을 줄 아는 사람, 내가 겪은 외로움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품어줄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다시 말랑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했던 그날의 슬픔을 오늘의 다정함으로 바꾸어 살아가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던 나날들을 견디며 내 안에 만들어진 이 단단한 품을, 이제는 다른 이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작은 그늘로 내어주고 싶다. 누군가의 상처 곁에 앉아주고,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을 듣기 위해 나도 더 낮아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가지려 애쓰기보다,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들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가 아니라, 말이 닿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더 크다는 걸 배웠다. 삶은 가벼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무겁지만, 나는 그 무게에 눌리지 않고 그 무게를 감싸 안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겪은 외로움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품어줄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다시 말랑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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