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을 아세요?

할아버지와 백일홍 이야기

by 이 경화


할아버지는 언덕위에 있는 대포집 할머니에게 작은 씨앗 몇알을 얻어오셨다. 정성스레 사과 궤짝에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리면서 작은 내 손으로 흙을 덮어주고 꼭꼭 눌러준 후, 조리개로 물을 흠뻑 주게 하신 후, 이제 이 꽃이 피면, 백일동안 착한일을 매일 하나씩 해야 꽃이 지지 않고 백밤을 자도 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꽃 한송이를 피우는 일에도, 사람의 보살핌과 따뜻함이 필요한것을, 이후 화초를 돌보거나, 이름없는 들풀을 보고 탄성을 질렀을때, 한쪽 마음은 저 꽃이 피기 위해 바람도 이기고, 따가운 햇볕도 이긴 생각을 떨구니, 역시 자연 어느것 하나 사랑없이는 불가능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잠시 부끄러운 얼굴을 묻는다.




몇날 며칠동안 잔뜩 백일홍이 피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 하기 전, 마당에 뛰어나가 물을 주는건 다섯살 꼬마 내차지였다. "어이쿠 우리 경화 참 착하다 " 라는 할아버지의 한 마디 칭찬이 나에게는 한잔의 시원한 물 한모금이였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나니 싹이 돋고, 줄기에 잎도 커지고 꽃 몽우리까지 맺히게 되었다. "할아버지 이거 언제 꽃이 펴? " 매일 매일 그 꽃 피기만을 바라던 어느날, 몽우리는 제법 봉긋하게 솟아 오르고, 꽃이파리를 하나씩 피워내기 시작했다. 진한 분홍색 백일홍이 피던 날 저녁, 저녁밥을 먹고 한참을 사과궤짝 앞에서 턱을 괴고 그 꽃을 감상하고, 할아버지는 그럴때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식물이고 많이 이뻐해주어야 탈이없다 " 라고 하셨다.





며칠전 골목을 지나다가, 우연히 알록달록한 꽃을 보게 되었는데,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언뜻 생각나지 않아,잠시 힘들었던 기억에 웃음이 나온다. 할아버지와 같이 심고 꽃 피우고, 한참동안 지켜본 꽃인건 알겠는데, 꽃 이름은 모기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것과 같이, 머릿속을 맴맴 돌고만 있었다. 머리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방긋 미소를 지으셨으리라 상상해 본다.





풀 한포기, 그리고 구르는 돌맹이 하나에도 듬뿍 애정을 가지라 하셨던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간혹 심장을 울컥거리게 하곤 한다. 오늘은 유난히 할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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