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나에게 기도가 되었다
나는 저절로 어머니 앞에서 매일 두 손을 모았다.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나는 중풍으로 매일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를 위해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손을 했다. 대상도 형식도 없이 말이다. 절박한 상황에 아홉 살의 소녀는 무릎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여느 날과는 다른 소원이 입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매일 몸의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피를 흘리셨고 나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굶기 일쑤였다. 오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의 기도는 어머니가 낫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 이 고통을 제발 거두어 달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애원했다. 그런데 신은 내 기도를 정확히 들어주셨다.
나는 어머니가 어쩌면 차라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매일 아프고 굶을 바에는 그런 게 낫다고 생각하며 그날은 제발 어머니의 고통만 멈추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러고 눈을 뜨니 내 기도와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어머니는 시커먼 얼굴을 하고 여전히 눈과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같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그날따라 너무 공포스러워서 나는 반사적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아마도 어머니가 나와 정을 떼시려고 그러신 것 같다.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반사적으로 뛰쳐나가 이웃집에 가니 밥을 차려주셨는데 한 숟갈도 넘어가지 않았다. 먹을 수도 없었고 밥을 먹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멀리서 호동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화야 경화야 그 다급함에 벌써 어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다. 방문을 여는데 방 안이 모두 흑빛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마치 그 방 자체가 시공간과 분리된 차원이 다른 연옥 같았다. 시커먼 기운들 어머니의 절규 소리 피비린내 어머니는 나를 부르다 부르다 돌아가셨다.
얼마나 애타게 부르셨으면 입가에는 누룽지처럼 피가 말라붙은 딱지가 앉아 있었고 동공은 열려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입가를 젖은 행주로 닦아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겨드리고 조용히 눕혀드렸다. 어머니의 죽음을 믿기 힘들었지만 현실로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가를 살며시 올려드렸다. 비록 고통 속에서 떠나셨지만 천국에 웃으며 들어가시라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은 어머니의 넋이 방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나는 허공을 향해 비손을 하고 깊숙이 절을 드렸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내 기도를 너무도 정확히 너무도 빨리 들어주신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후로도 아침저녁으로 매일 두 손을 모은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이후 천주교의 모든 기도와 미사 예절 안에 있는 그 ‘비손’이 참 좋았다. 인간이 절박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모아지는 두 손 그 간절함이 좋았다. 미사 중 무릎을 꿇는 예절도 좋았다.
문득 성체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아홉 살 때 그날의 절박했던 마음으로 돌아간다. 신도 몰랐고 대상도 없었던 그 순전했던 기도 누군가를 살리고 싶었던 그 작은 아이의 마음이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나는 그 마음으로 다시 살아간다. 다시 빌고 다시 일어난다.
그 절실한 마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더 세인트를 만든다.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편히 살아도 된다고 왜 굳이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가느냐고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두 손을 모아 살아간다. 고통에 꺾이지 않고도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그저 살아 있는 날 동안 누군가의 눈물 한 방울을 덜어주기 위해 그것이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하듯 길을 닦는다. 누군가 절박하게 걸어올 작은 길 하나를 나는 처음 들어서는 공간마다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린다. 산에 오를 때도 말한다. 제가 산에 듭니다. 내려올 때는 감사의 절을 드리며 말한다. 제가 산에서 돌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이 모든 여정이 나에겐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프로젝트나 계획이 아니라 기도다. 내가 지나온 고통의 시간들과 절박한 기도 그 속에서 태어난 모든 다짐과 기억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길이 되었고 그 길을 걷는 이 작은 발걸음이 곧 신에게 드리는 기도문이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두 손을 모은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 외롭고 지친 마음 하나 상처로 잠 못 이루는 이름 없는 영혼 하나를 위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을 향해 나는 오늘도 묵묵히 두 손을 모은다.
그 행위는 단지 습관이 아니라 나에게 남겨진 신의 언어이며 내 삶의 방식이고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곧 내가 세운 성전이며 이 삶 전체로 지어 올린 나의 더 세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