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by 마르치아


누구는 사랑 때문에 산다고 하고 누구는 책임 때문에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문득 고요한 새벽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건 아주 사소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고 그저 아무도 없는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세상이 나를 아직 허락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살다 보면 문득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달리다 지쳐서가 아니라 애초에 왜 달렸는지 그 이유가 희미해질 때 나는 내가 마치 누구도 부르지 않았는데 혼자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 나는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잡는다. 오늘 아침 고양이의 눈빛이라든가 우연히 들은 노래의 가사 한 줄이라든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 하나처럼 내 삶을 이어주는 건 거대한 목적이 아니라 이유도 없고 설명도 안 되는 그런 순간들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대신 나는 그냥 살아 있는 이유들을 모은다. 그건 매일 조금씩 다르고 어쩌면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이지만 그 불안정한 것들이 나를 오늘도 살게 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어떤 날은 그 이유마저 희미해져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자주 아주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그곳은 침묵이 눅눅하게 깔린 바닥이고 생각조차 소리를 내지 않는 곳이며 마음의 모든 파편들이 부유하다가 마침내 가라앉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더는 견딜 수 없어 내려온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가장 나다워진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괜찮고 웃지 않아도 아무도 묻지 않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


그곳에서 처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 닿기 위한 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살아가는 이유란 결국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비틀리고 깨어진 날들 속에서도 내가 나에게 다가가는 걸 멈추지 않는 것.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면서도 나를 다독이듯 조용히 숨을 쉬는 것.


그게 이유 없는 삶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작고 단단한 이유들이다.


나는 다시 떠오를 것이다. 다시는 가라앉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가라앉는 일도 내 삶의 일부였다는 이해 속에서 더 깊이 숨 쉬며 살아가는 이유를 하루하루 다시 쓰며.


그리고 아주 가끔 누군가의 문장 한 줄이 나를 붙잡기도 한다. 그 사람은 내 삶을 알지 못하지만 그 고백 속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그 문장을 따라 내 안으로 더 깊이 내려가게 된다.


어느 날의 대화 어느 날의 눈빛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조차 미처 알지 못한 순간들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나는 안다 누군가의 생이 되어본 적 없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생도 끝까지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끔 다른 사람의 생을 가만히 빌려본다. 그의 기쁨도 그의 상실도 내 살아가는 이유의 한 조각이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만의 삶을 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삶을 조용히 건너오는 일이기도 하다. 상처를 건너고 상실을 건너고 어느 날엔 따뜻함을 건너오기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살아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어제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내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누군가가 나를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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