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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아무도 모른 둥근상의 비밀

by 마르치아



밥상이 둥그런 이유는

누가 상석이고 누가 말석인지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이

먼저 자리에 앉고

나머지는 빙 둘러

자연스럽게 앉으면 그만이다.


그 둥근 원 안에는

권력도 없고 서열도 없다.

오직 밥을 나누는 사람들만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밥상을

참 좋아하셨다.


“경화야,

네모난 상은 꼭

누가 윗사람처럼 보이지?


근데 이 둥그런 상은 말이야,

우리 모두가 서로를 똑같이 보는 상이란다.


밥을 나눌 땐 사람도

같이 나누는 거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는 왜 여기 앉아?”


“할아버지? 음...

그냥 제일 먼저 앉았을 뿐이지.

상석은 없단다, 우리 집 밥상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씩 웃으며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작은 내 엉덩이가

이만한 둥근 상자리에

내 몫을 조용히 차지했다.


가장 먼저 국을 퍼주는 손이 있었고

가장 늦게 밥숟가락을 드는 이를

기다려주는 눈빛도 있었다.


정갈한 밥상 위에는 내가 싫어하는

반찬도 놓여져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된장국 한 숟갈이면

모든 마음이 풀어졌다.


어느 날, 나는 투덜거렸다.


“된장국 너무 짜...

물 말아 먹을래...”


할아버지는 조용히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에이, 요놈아.

된장국이 짠 건 말이지,

하루 종일 힘 써서 흘린 땀맛이란다.


짠 건 짠 대로,

싱거운 건 싱거운 대로 먹어봐.


그게 세상 맛이야.”


나는 말없이 국에 물을 타긴 했지만

그날따라 그 짠맛이

자꾸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그 밥상이 어느 순간

우리 집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네모난 식탁이 들어왔고

누구는 TV를 보며 따로 밥을 먹고

누구는 일찍, 누구는 늦게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밥을 ‘해결’하게 되었다.


밥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처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경화야,

밥 먹는 건 일상이지만

같이 먹는 건 기적 같은 거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마음 맞춰 앉는 거

그게 쉽지 않거든.”


할아버지의 말이

이제야 제대로 들려온다.


나는 요즘도

그 둥그런 밥상을 그리워한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상,

자리를 가리지 않는 상,


그리고 그 안에서

웃음도, 눈물도, 소리도

둥글게 돌던 시절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경화야,

다시 둥근 상 차릴 수 있겠니?


네가 어른이 되면,

그 상에 또 누군가를

앉힐 수 있겠니?”


할아버지의 물음은

오래전 일이건만

아직도 내 귀 안에서

조용히 맴돈다.


그래요, 할아버지.


나도 언젠가

다시 둥근 밥상을 꺼낼게요.


서열도, 급함도 내려놓고

그저 한 끼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그 상을 가득 채울게요.


그때, 할아버지도 와서

된장국 한 숟갈 뜨세요.


짠맛도

이제는 그리운 맛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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