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하늘을 보게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작은 괴나리 호족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밥상,
그 위에서 나는 밥보다 먼저 사람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식사하는 분이었고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생선이 올라오는 날엔
질문도 대답도 잠시 쉬었다.
할아버지는 생선을 조심스럽게 발랐다.
가운데에 젓가락을 넣고 등살을 걷어낸 뒤,
가시를 따라 양옆을 나누어 가장 부드러운 살을
내 밥그릇에 먼저 놓아주셨다.
“머리부터 뒤집지 말고, 살만 걷어 먹는 거야.”
나는 그 말뜻을 모르면서도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눈길을 움직였다.
그는 생선 가시를 통째로 걷어내며
흐트러지지 않은 흐름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것을 마법처럼 느꼈다.
“생선은 뒤집는 게 아니여.
생선 눈이 하늘을 보게 두는 건 예의가 아니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고등어 한 마리 앞에서 배운 건
단지 먹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생선을 다 발라 나에게 주신 뒤
할아버지는 잔가시만 남은 뼈에서
자신의 몫을 골라 드셨다.
나는 그게 어른의 사랑인 줄만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어른이 먼저 감정을 삼키고
질서를 지켜주는 방식이었다.
생선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날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다른 반찬처럼 마구 휘저을 수 없는 음식 앞에서
우리는 잠시 진지해졌고,
그 고요한 손놀림과
접시를 뒤집지 않는 마음은
그저 식사의 예절을 넘어서 있었다.
지금 나는
생선이 올라온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그날을 다시 산다.
한쪽 살을 천천히 걷어내고
가시를 중심으로 흐름을 따라가는 일.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사람을 배려하는 연습이고,
어떤 기억을 조용히 꺼내어
망가뜨리지 않고 되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