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첫 음식에 대한 기억

첫음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by 마르치아


어릴 적 나는 늘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초대였고 작은 괴나리호족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밥은 식지 않았고 마음도 식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먼저 젓가락을 들지 않으셨고 내가 무엇을 고르는지를 천천히 바라보며 기다리셨다 나는 그 시선을 잘 몰랐고 그저 어른이 아이를 지켜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지만 나중에서야 그것이 얼마나 깊은 배려였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처음 먹는 음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그 밥상에서 처음 들었다 "첫 숟가락이 그날 마음을 정하지" 할아버지는 국을 먼저 떠서 내 그릇에 조심스럽게 부어주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사리무침을 집었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너는 참 생각이 깊은 아이다”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어떤 아이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깊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무엇을 먼저 먹어야 그 말에 어울릴까 하고 말이다


그 첫 음식은 단지 입안에 머물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말없이 드러내는 방식이었고 할아버지는 그 방식으로 나를 읽으셨다 어른이 되어 많은 자리에 초대받고 수많은 이들과 밥을 나누면서 나는 자주 그 어린 날의 밥상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첫 젓가락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와 배려심까지도 조심스레 읽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보면 밥상은 말이 필요 없는 언어였고 첫 음식은 그 사람의 성정이 흘러나오는 시작점이었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첫 음식을 무엇으로 고르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첫 경험을 누구와 나누었는가이다 내게는 나를 기다려주고 바라봐주던 할아버지가 있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식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은 고사리무침 한 젓가락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묵묵히 내릴 국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받았고 그래서 누군가를 그렇게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밥을 먹는다는 건 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세계에 조용히 입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마다 그의 첫 젓가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사람은 어떤 밥상에서 자라났을까 누구의 사랑을 국물처럼 받아 마셨을까 아니면 그 밥상이 늘 비어 있었던 사람일까 그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나는 아마 아직도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섯 살 꼬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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