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조화가 중요하단다
할아버지는 밥상 앞에 앉으실 때마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상은 눈으로도 먹는 거야. 색을 봐. 색이 흐트러지면 마음도 흐트러지는 거여.”
다섯 살이던 나는 그 말을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할아버지의 숟가락이 멈추는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이건 동쪽 기운, 이건 남쪽. 다섯 가지 색이 자리를 잘 잡아야, 하루가 고르게 흘러가는 거지.”
“할아버지, 이건 무슨 색이에요?”
“그건 누른색. 콩나물은 땅의 색이야. 중심을 붙잡아주는 거지.”
“그럼 이건요?”
“그건 검은 거. 김은 북쪽, 밤의 기운이여. 겁 많을 때는 그걸 많이 먹어.”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겁이 날 때면 김을 한 장 더 얹어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빙긋이 웃으셨다. “잘 먹네. 밥 잘 먹는 애는 절대 망가지지 않아.”
할아버지는 오방색을 단지 색으로 가르친 게 아니었다. 그건 하루를 살아가는 다섯 가지 마음이었고, 인간이 자연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빨간 무생채는 왜 필요하냐면 말이지, 심장처럼 용기를 내게 해. 안 먹으면 마음이 처진다.”
“그럼 초록 나물은요?”
“그건 봄의 숨결. 답답할 때는 푸른 거 많이 먹어. 사람이 숨통이 트이지.”
나는 그 오방색이 있는 밥상이 마치 우주 같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 색은 곧 기운이었고, 기운은 하루를 살아낼 힘이었다. 우리는 그 작은 밥상에서 계절을 나누었고, 날씨를 견뎠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은 엄마가 반찬을 후딱 차리자 할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빨간 게 너무 많아. 그럼 마음이 가라앉아. 중간색이 있어야 해.”
엄마는 머쓱해하며 노란 단호박을 꺼내 와서 한 그릇 더 올렸다. “이 정도면 균형 맞죠?”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들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날의 밥상을 기억한다. 그건 색의 조화였고, 마음의 정돈이었다. 수많은 날들 속에서 나는 어떤 기억보다 뚜렷하게 밥상을 기억한다. 반찬 그릇들이 놓인 자리, 숟가락의 방향,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말투.
“밥상은 살아 있는 거여. 마음이 지쳐도 밥 한 그릇은 살아 있게 해준다.”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내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나는 오방색을 떠올린다.
밥을 차리고, 나물을 무치고, 된장을 푼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