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엄마의 행주 치마

정갈한 밥상엔 정갈한 마음이 담기거든

by 마르치아




엄마는 부엌일을 하실 때면 늘 뽀얀 무명 행주치마를 두루셨다.
그 앞치마 한가운데에는 손톱만 한 야생화 자수가 수줍게 피어 있었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그 작은 꽃은
엄마의 마음 같아서, 나는 자주 그걸 들여다보곤 했다.




“손님 오실 땐, 가장 정갈한 옷차림이어야 해.
정갈한 밥상엔 정갈한 마음이 담기는 법이거든.”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앞치마 끈을 고쳐 매셨다.

손님이 오실 때 사용하는 은수저는 뽀얀 무명천에

고이 감겨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어 두셨다.
‘서랍 냄새 배면 안 된다’며 이따금 꺼내어 마른 행주로 닦으시는 모습은
어쩐지 어린 나에게 의식처럼 느껴졌다.



밥을 짓는 시간도, 반찬이 상에 오르기까지의 순서도
엄마에게는 철저한 계산이 깃들어 있었다.
솥에 밥을 앉히는 시점, 계란찜에 불을 넣는 순간,
고등어를 뒤집는 그 찰나까지도
엄마는 손님 도착 시간에 맞춰 움직이셨다.



“음식은 뜨거울 때, 제 맛일 때 내놔야 해.
그래야 마음도 따뜻해지지.”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김이 서린 창을 닦았다.

손님이 예정된 시간보다 늦으실 때면
엄마는 장난스레 내게 말하셨다.



“얘야, 머리 좀 긁어봐라.”


내가 이마 가까이를 긁으면 “아, 거의 다 오셨네.”
옆머리를 긁으면 “응, 딴 데 들렀다 오시겠구만.”
그 말이 진짜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의 웃음 속엔 늘 손님을 향한 반가움이 가득했다.



엄마의 행주치마는 그래서 단순한 앞치마가 아니었다.
그건 누구를 초대하고 환대하는,
삶의 마중물 같은 성스러운 옷이었다.
행주치마를 두른 순간, 엄마는 집의 사제이자
환대의 연출가가 되었다.



할아버지도 그러셨다.
밥상을 앞에 두고 늘 나를 바라보시며 말했다.



“사람은 말이야, 어떻게 밥을 먹는가로 알 수 있어.
밥을 어떻게 먹느냐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지.”



밥상머리에서 나는 사람을 배웠고
음식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도 거기서 알았다.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를, 삶을 함께 살아준다는 말 없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은
늘 밥상에서 시작되어,
밥상 위에서 피어나고,
손님이 돌아갈 때엔
늘 무언가 손에 쥐어 보내는 인심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 모든 게 보인다.
엄마가 왜 음식을 설명해주셨는지,
왜 한 조각의 나물에도 유래를 붙이셨는지,
왜 할아버지가 반찬 하나, 먹는 순서 하나로
사람됨됨이를 이야기하셨는지.



지금은 다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살뜰한 생활 자세,
그 모든 것을 물려주신 두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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