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마
밥을 꼭꼭 씹어야 하는 이유
–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살아 있는 방식
밥상머리에서 누군가가
삶을 가르쳐준 적이 있는가.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다섯 살의 어린 내가 밥상 앞에
조심스레 앉았던 날.
할아버지는 밥그릇에 밥을 푸며
내 눈을 바라보셨다.
그 시선엔 조금의 재촉도, 타이름도 없었다.
다만 기다리는 마음과
따뜻한 자상함이 있었다.
“이건 그냥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숟가락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밥은 꼭꼭 씹어야 해.
그래야 네 속이 놀라지 않고,
마음도 천천히 자란단다.”
그날 나는
배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불러왔다.
하얀 밥알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질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혀끝에서 퍼지는 걸 느꼈다.
씹고 또 씹다 보면,
밥은 단맛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단맛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흙 속에서 자라온 시간의 맛이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이 어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밥보다 더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밥을 허투루 먹지 않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씹고 또 씹었다.
슬픈 날엔 눈물과 함께 삼켰고,
기쁜 날엔 웃음과 함께 넘겼다.
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그것을 꼭꼭 씹는 일은
나를 지키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살다 보면,
말도, 감정도, 사랑도
천천히 씹어 삼켜야 할 때가 있다.
대충 넘기면 체한다.
소화되지 않은 마음들은
언젠가 어디선가 아프게 올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배우듯,
관계도, 삶도
천천히 꼭꼭 씹으며 살아가야 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밥을 씹는 횟수만큼
네 삶은 단단해질 거다.”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축복을 매일 한 숟갈씩 되새긴다.
오늘도 밥을 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앞에 앉아
그날의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마 아가 천천히 먹어.
밥은 삶을 꼭꼭 씹는 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