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밥을 꼭꼭 씹어야 하는 이유

서두르지 마

by 마르치아


밥을 꼭꼭 씹어야 하는 이유


–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살아 있는 방식


밥상머리에서 누군가가

삶을 가르쳐준 적이 있는가.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다섯 살의 어린 내가 밥상 앞에

조심스레 앉았던 날.


할아버지는 밥그릇에 밥을 푸며

내 눈을 바라보셨다.

그 시선엔 조금의 재촉도, 타이름도 없었다.

다만 기다리는 마음과

따뜻한 자상함이 있었다.


“이건 그냥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숟가락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밥은 꼭꼭 씹어야 해.

그래야 네 속이 놀라지 않고,

마음도 천천히 자란단다.”


그날 나는

배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불러왔다.

하얀 밥알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질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혀끝에서 퍼지는 걸 느꼈다.


씹고 또 씹다 보면,

밥은 단맛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단맛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흙 속에서 자라온 시간의 맛이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이 어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밥보다 더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밥을 허투루 먹지 않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씹고 또 씹었다.


슬픈 날엔 눈물과 함께 삼켰고,

기쁜 날엔 웃음과 함께 넘겼다.

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그것을 꼭꼭 씹는 일은

나를 지키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살다 보면,

말도, 감정도, 사랑도

천천히 씹어 삼켜야 할 때가 있다.


대충 넘기면 체한다.

소화되지 않은 마음들은

언젠가 어디선가 아프게 올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배우듯,

관계도, 삶도

천천히 꼭꼭 씹으며 살아가야 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밥을 씹는 횟수만큼

네 삶은 단단해질 거다.”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축복을 매일 한 숟갈씩 되새긴다.


오늘도 밥을 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앞에 앉아

그날의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마 아가 천천히 먹어.

밥은 삶을 꼭꼭 씹는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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