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데로 의미를 알자
조물조물은 손바닥이 닿지 않게, 손가락의 동작으로만 재료에 간을 속까지 배어들게 하는 동작이다. 손바닥의 무게는 피하고, 오로지 손가락의 섬세한 감각만으로 시금치든 고사리든, 재료의 결을 다치지 않게 어루만진다.
이 동작에는 힘이 없다. 대신 마음이 있다. 살며시 잡고, 가볍게 비비고, 천천히 풀어놓는 과정 속에서 ‘먹는 사람을 위한 마음’이 스며든다. 말로는 하지 않지만 그 손끝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오늘도 잘 먹어. 너를 생각하며 무쳤어.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나물을 무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유난히 조용했던 저녁 무렵이었다. 엄마는 시금치의 물기를 꼭 짜낸 후, 들기름과 소금을 넣고 조심스럽게 무치고 계셨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는지, 괜히 숨을 참고 지켜보게 될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조물조물은 꼭 손가락으로만 요롷게 요롷게 해야 돼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사리 한 줌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리고 내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씀하셨다.
“응, 손바닥을 대면 안 돼. 손바닥엔 힘이 있거든. 근데 나물은 부드러워서 세게 누르면 숨이 죽고 질겨져. 조물조물은 손가락으로 살살 무쳐야 간이 안쪽까지 스며들고, 나물도 안 다쳐.”
나는 엄마를 따라 작은 손가락으로 고사리를 살살 집어 들었다.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양념이 골고루 묻도록 살짝 비비는 그 느낌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셨다.
“그렇지, 그렇게. 조물조물은 말하자면, 숨소리로 하는 요리야. 너무 크면 안 들리고, 너무 작아도 잊혀지니까, 딱 숨결만큼의 힘으로 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물 무치기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공부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가 손끝을 타고 들어와, 나물보다 먼저 내 마음을 무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조물조물이 소리 없는 다정함이라는 걸 배웠다. 빠르게 무쳐낸 반찬에는 양념이 겉돌 뿐이지만, 조물조물 무쳐낸 반찬은 하룻밤을 지나도 여전히 제 맛을 간직한다.
살아보니 조물조물은 부엌에서만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를 다룰 때, 내 마음의 상처를 만질 때도, 조금은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너무 세게 누르지 않고, 손바닥이 아니라 손끝으로 다뤄야 할 순간들이 있었다.
조물조물은 삶을 다루는 태도다. 있는 그대로 두되, 부드럽게 길들이고, 소금기와 온기가 골고루 퍼지도록 기다리는 일.
이제는 내가 엄마 없이 혼자 나물을 무치지만, 손끝이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내게 쥐어주던 고사리의 촉감, 숨소리로 들려주던 그 말들, 그 다정한 조물조물.
오늘도 나는 손바닥은 들지 않고, 손끝으로 조용히 한 줌의 마음을 양념처럼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