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은 밥상에서부터
사람을 사귀거든 세 번의 식사를 해 보거라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작은 괴나리 호족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밥은 식지 않았고 마음도 식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밥보다 내 표정을 먼저 살피셨고, 반찬보다 내 마음의 간을 먼저 재보시는 분이었다.
어느 날 조용히 밥을 먹다 말고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귀거든, 세 번은 같이 밥을 먹어봐야 해.”
나는 젓가락을 들다가 멈추며 되물었다.
“왜요? 한 번 보면 안 돼요?”
할아버지는 된장찌개를 천천히 풀어 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다들 좋은 모습만 보여. 예의도 지키고 말도 조심하지. 두 번째쯤 되면 좀 편해지니까 성격이 슬쩍 나오지. 그런데 세 번째 밥상에서는 그 사람 마음이 다 보여.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보이거든.”
그땐 그 말이 그저 오래된 말장난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수없이 많은 식탁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 말이 그냥 어른의 말씀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 식사는 풍경이다. 밝은 표정과 예의 바른 말씨, 좋아하는 음식이냐 묻는 다정한 말들. 그 사람의 가장 겉옷 같은 시간이다. 자기 이야기는 아껴두고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고 공손한 모습으로 밥을 먹는다. 그 자리는 분위기를 먹는 자리다. 밥보다 말이 더 많고, 속보다 외피가 더 반짝인다.
두 번째 식사에선 사람이 천천히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반찬을 고르는 순서, 물컵을 채우는지 아닌지, 주문을 하는 태도와 직원에게 건네는 눈빛, 젓가락을 드는 타이밍까지 조금씩 그 사람의 생활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표정은 여전하지만 젓가락은 솔직해지고, 밥 위에 성격이 얹히기 시작한다.
세 번째 식사에 이르면 마음이 식탁 위로 내려앉는다. 침묵을 어떻게 견디는지, 반찬이 모자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식어가는 국을 서로 바꿔주는지, 이제야 그 사람이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살아가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말이 없을 때 함께 말이 없어주는 사람, 내 숟가락을 바라보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 그가 진짜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인지, 이쯤 되면 밥상이 먼저 대답해준다.
할아버지는 말씀 하셨다.
“밥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마음이 단단한 법이다.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사람은 남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말보다 밥을 어떻게 먹는지를 보렴. 숟가락 끝에 사람이 담긴단다.”
나는 지금도 그 말들을 기억하며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 세 번의 밥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사람이 내 마음과 같이 앉을 사람인지, 그 밥이 다 식어도 함께 있어줄 사람인지, 아니면 다음 밥상은 굳이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지.
사람을 사귀거든 세 번의 식사를 해 보아라. 첫 번째는 차가운 밥을 함께 먹어보아라. 불편한 자리에서 그의 태도를 살펴보아라. 두 번째는 국이 넘치도록 따뜻한 밥을 먹어보아라. 그녀가 넘치는 감정과 온기를 어떻게 건네는지 보아라. 세 번째는 말없이 밥을 먹어보아라. 그 침묵이 어색한지 편안한지, 그의 숨결이 식탁을 덥히는지 확인해보아라.
밥은 말보다 먼저 사람을 보여준다. 밥상은 마음의 결을 드러내는 가장 조용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