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가 예전에 앉았던 자리 가까이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조금 흔들리고,
빛은 네가 좋아하던 각도로 쏟아졌다.
무심히 두었던 유리잔 안에서
조용한 기척이 일었다.
얼음은 다 녹지 않았지만,
녹아가는 그 속도로
무언가 내 안에서 풀려나갔다.
손등을 스치는 바람이
너를 닮은 듯했다.
가볍고, 조용하고, 오래 남았다.
마주 보며 웃던 날의 말투가
아직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잔을 들다가 문득 멈췄다.
그때 너도, 이런 움직임으로 나를 보았을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 장면도 다시 펼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네가 이곳을 스쳐간다면
기억 속 어느 조용한 오후처럼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그냥… 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다만 너의 자리에
빛이 조금 더 오래 머물도록
잔을 비워두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