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온도

나이 든다는 것

by 마르치아



젊었을 때는


젊을 적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사는 줄 알았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고, 경험이라는 깃발을 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줄로 알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했고, 무엇이라도 이루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살아간다는 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나이 들어서는 사색의 힘으로 하루를 버티고, 견디고, 감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더 이상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조용한 고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고독은 기꺼이 맞이하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이 고요함이야말로 젊은 날의 번잡함을 정화시키는 깊은 우물이었다.


젊을 때는 작가처럼 살았다. 느낀 것을 쓰고, 본 것을 말하며, 세상을 해석하고 나누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철학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세상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하는 것이라는 걸.


사물은 더 이상 나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일들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고, 그것들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려는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세상엔 수많은 삶이 있고, 모두가 각자의 시계와 날씨를 안고 살아간다.


지혜란 건 크게 외치지 않는다. 조용히 침묵 안에서 익고, 고요한 나무에서 열매 맺듯 그렇게 어느 날 문득 다가온다. 사과나무엔 사과가 열리고, 배나무엔 배가 열리듯, 어리석은 이의 나무에서는 지혜가 열리지 않는다. 그걸 깨달은 뒤엔 사람을 탓하기보다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흔히, 나의 경험으로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의 고통과 내 마음의 결은 신과 나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왜 그런 인연이 그 시기에 스쳐갔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제 삶 하나도 해석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삶에서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 때로는 탐정처럼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질문을 던질 용기가 부족하다.


젊은 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나서까지 그 많은 관계를 붙잡고 있는 건 자칫 스스로를 소모하는 일이다. 열정이 백이라면 모두 다 써버리지 말고,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열정은 누룽지가 아니다. 긁어 태워가며 끝까지 짜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나이 들어 친구의 수를 자랑하는 것은 어쩌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현자는 자기 자신과 벗이 된다. 시끄럽고 흥청망청한 무리보다, 조용하고 깊은 이 하나면 족하다.


그 하나에게 내 남은 열정을 나누고, 존중을 나누며 벗이 되는 일이야말로, 백 명의 인연보다 더 귀하고 따뜻한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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