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주 오해받기 위해 태어난 별들이다"

by 마르치아
"우리는 모두, 자주 오해받기 위해 태어난 별들이다".





니체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오래 숨을 들이마셨다. 그 말이 너무 나 같아서, 너무 오래 내 안에 있었던 것 같아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해는 말하지 않은 마음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편지 같고, 우리는 때때로 그 편지를 뜯기도 전에 찢어버리며 살아간다. 니체는 찢지 않았다. 그는 오해를 펼쳐놓았고, 기록했고, 견뎠다. 그리고 그 견딤이,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냉소적이라 말한다. 위험한 철학자, 신을 부정한 이단자, 윤리의 해체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문장에서 칼보다 먼저 체온을 느꼈다. 말보다 먼저 울음이 있었고, 사유보다 먼저 슬픔이 있었다. 그 슬픔이 차갑고 단단한 말들로 변해 우리 앞에 놓였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들에게 실망했고, 그 실망조차 끝내 사랑하려 애쓴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고독을 철학이라 부르기보다, 오히려 오래된 기도 같다고 느낀다. 말로 꺼낼 수 없던 것을 그는 문장으로 남겼고, 그 문장들은 아직도 사람들의 오해 속에 갇혀 있다.





그는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겨눴고, 침묵을 껴안고 버텼다. 고독은 니체를 부순 것이 아니라, 니체가 가장 오래 품었던 거울이었다. 나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 또한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해받지 못했던 말들, 내게 묻지도 않고 붙여진 수많은 해석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긴 시간들. 설명을 거절하는 대신 침묵으로 대답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니체의 문장 하나가 조용히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자주 오해받기 위해 태어난 별들이다.”





살면서 나도 수없이 오해를 받았다. 나는 자주 침묵했고, 그 침묵은 회피라 불렸다. 누군가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섰을 때, 나의 진심은 경계로 되돌아왔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너무 무겁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말을 줄였고, 마음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 침묵은 나를 지켜주는 벽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문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의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결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니체는 결국 미쳐버렸다고들 말한다. 그 마지막을 실패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랑의 무게였다고 믿는다. 끝내 닿지 못한 진심이 스스로에게 쏟아져 내리는 순간, 그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아꼈던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니체에게 신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신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신조차 대답하지 않던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별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아주 멀리서 오래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깊고 단단한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만은 안다. 오해는 그 어둠의 이름으로 내게 찾아왔고, 나는 그 어둠을 견디며 점점 나를 알아갔다. 누군가의 이해가 아니어도 나는 나를 지켜야 했고, 설명하지 않아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 했다. 사람은 이해받지 못할 때 조금씩 진짜가 된다. 나는 그 진짜가 되기 위해 많은 오해들을 받아들이며 걸어왔다.





어느 날 밤,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자주 오해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지켜주었다. 이해받지 못한 시간들이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단단함 속에서 흔들리는 법을 배웠다. 나는 결국, 그 오해들 덕분에 나 자신이 되었다.




별이 된다는 건 반짝이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먼 어둠 속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왜 침묵했는지, 왜 울지 않았는지, 왜 돌아서야 했는지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이해받지 않아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을 니체에게서 배웠고, 그 배움은 오늘도 나를 지탱하는 조용한 기둥이 되어준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오해받은 사람들 곁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 설명보다 응시가 더 깊고, 위로보다 침묵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기에. 오해는 우리가 끌어안고 함께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얼굴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별의 온도를 이해하게 된다. 아주 멀고, 아주 조용한 그 빛의 호흡을 따라, 나도 나만의 궤도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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