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바느질
"코르셋처럼 조여오는 문장과 파자마처럼 느슨한 문장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다."
문장은 늘 내 마음의 체온과 어깨선을 따라 붙고 흘러야 했다. 너무 단단하게 조이면 진심이 숨 막히고, 너무 풀어지면 중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문장이라는 옷을 하나하나 맞춤으로 꿰맨다. 말은 흘러가지만 문장은 남는다. 말은 타인을 향하지만 문장은 나를 감싼다.
나는 말보다 문장을 먼저 배운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바로 표현하기보다는, 조용히 글로 풀어내는 버릇이 먼저 들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고, 동시에 나를 고립시키는 방식이었다. 감정을 바로 꺼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때때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거리마저도 문장으로 감싸고 싶었다. 거리는 곧 여백이 되었고, 여백은 언젠가 문장이 되었다.
좋은 문장은 마치 잘 맞는 옷 같다. 문장이 너무 꽉 끼면 숨을 쉴 수 없고, 너무 헐렁하면 중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나에게 딱 맞는 말의 결을 찾으려 애쓴다. 단어 하나를 고르기까지 몇 날 며칠을 쓰고 지우고, 문장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고 밤을 넘기는 일도 잦다. 누군가는 그걸 민감함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 진심을 정확하게 입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감정이 옷을 입지 않으면 그것은 타인의 것이 되고, 문장이 그 옷이 되어주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말이 아니다.
나는 종종 문장 속에서 울음을 삼킨다. 누군가를 향해 하고 싶었던 말, 끝내 하지 못한 고백, 사랑보다 오래 남은 미안함과 미움들. 말로는 차마 꺼내지 못한 것들이 문장 속에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문장이라는 옷은 그래서 때로는 진심보다 더 진심 같고, 침묵보다 더 깊은 말이 된다. 옷은 체온을 감추기도 하지만 체온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장도 그렇다. 나는 내 마음이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문장으로 덧대고 덧대어 입혀왔다. 그것이 나를 지켜온 방식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호흡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에 옷을 입히는 일이다. 때로는 단정한 옷을, 때로는 흐트러진 옷을. 어떤 날은 너무 얇아서 다 드러나고, 어떤 날은 너무 두꺼워서 스스로조차 감정의 결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다르게 입는다.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언어의 형태를 찾기 위해. 그리고 그 형태를 통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옷을 조심스레 만져주기를 바란다.
문장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나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고요한 색을 좋아했다. 내 문장도 그러했다. 과하게 꾸미지 않고, 필요 없는 부사를 지우고, 감정을 너무 드러내기보다 감정이 흘러가게 놓아두는 일. 그것이 내가 문장을 입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나는 사람들과, 세상과, 그리고 오래된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독자가 내 글에 댓글을 남겼다. “이 글을 읽고 나니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나는 그 짧은 말에 오래 멈췄다. 그 말은 ‘당신의 옷을 입어보았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가 내 문장을 입고 걸어갔다는 사실은, 내가 그 사람에게 외투 하나를 건넸다는 사실은, 그날 하루 동안 나를 따뜻하게 해줬다. 그 따뜻함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문장을 짓고, 옷을 만들고, 삶을 감싸는 일을 나는 앞으로도 조용히, 오래도록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