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조금 더 자랐다

이런 나에게 감사한다

by 마르치아




올 한 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어느 해가 그리 순탄했냐고 묻는다면 금세 대답하긴 어렵지만, 올해는 유독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다시 자라났으며, 그 와중에 나는 내 자신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억울함 앞에서 마음을 쓰고, 속을 끓이며, 그 감정들을 오래도록 머금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상할 만큼 다르다. 시련을 대하는 내 태도가, 변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게, 내 안에 아주 가느다란 나이테 하나가 더 새겨졌다. 그건 화려한 전환도, 누군가의 박수도 필요 없었다. 다만 나는 안다. 그 가느다란 선을 그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질문과 침묵을 거쳐왔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말들로 적셔왔는지를.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에 열광하지만, 나는 그 얇은 고리 하나가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자 수확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삶에 질문이 생기면 언제나 자연에게 묻는다. 그건 나의 오랜 습관이자 유일한 구도 방식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집안의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나는 사람들보다 나무와 풀, 별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억울한 일이 생기면 나는 나무를 안고 울었다. 말이 없는 존재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내 안의 말을 멈춘다는 것이기도 했다. 침묵은 아프지만, 거기서 길이 생겼다. 기쁜 일이 생기면 별들과 대화를 나눴다. 손뼉을 칠 이가 없을 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참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면 별들은 눈처럼 빛났다.





풀들과 속삭이고, 나무의 숨결에 기대어 살아온 이 반년이라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절이었다. 사계의 이름으로 나눌 수 없는 나만의 계절.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달라졌다. 서운하고, 되지 않았던 일들도 많았다. 아쉬운 일이야 어디 한둘이랴. 기대는 깨졌고, 내가 쏟은 마음이 허공으로 흩어졌던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감사한다. 그 모든 경험이 결국 나를 만들었기에. 그 순간들은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한 나이테가 되었다. 겉껍질도 아니고, 허울도 아니며,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 만든 모양이 아니라, 고요히 안쪽에서 천천히 겹쳐진 진짜 시간이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은 운명에게 나를 맡기며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다. 이 말이 체념처럼 들릴 수도 있고, 혹자는 ‘자기 결정권’이 없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운명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흐름에만 맡긴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몫을 다 한 다음, 그 다음의 흐름에 자신을 놓아두는 법을 배운 것이다. 억지로 버티거나, 움켜쥐려 하지 않고, 서서히 낮아지는 태양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자세. 그것이 내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다. 흰머리를 감추기보다 햇살에 내어맡기고, 주름을 펴려 하기보다 웃을 때 깊게 패인 그 자국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다가오는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 그리고 내가 안아야 할 인연 사이의 경계조차 어느 순간 흐릿해지는 지금,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줄고, 시선은 더 깊어진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다짐한다. 나의 에너지를 아무 데나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나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인연에게, 나의 삶이 품은 가치와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고.





뿔을 가진 동물들은 새 뿔을 얻기 위해 반드시 헌 뿔을 떨어뜨린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해마다 되묻게 된다. 나는 올해 어떤 헌 뿔을 버렸을까. 어떤 집착을 놓고, 어떤 미련을 내려놓았을까. 돌아보니, 오직 '상승'에만 혈안이 되었던 나의 삶에서 이제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보다 마음의 방향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고, 흐름을 억지로 바꾸기보다 그 속에 나를 조율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게 내가 얻은 새로운 뿔이었다. 그래서 이 소중함을 미력한 글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지금은, 한 해의 중간이다. 나는 이 시점을 참 기쁘고 소중하게 여긴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는 시기, 지나온 시간을 끌어안고 앞으로의 날을 생각하게 되는 시기. 나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에게 오는 소중한 사람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나는 성공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남보다 앞서는 일이 아니다. 내게 성공이란, 환경이 변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의 절반을 지난 지금 나는 분명히 조금 성공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걸로 나는 만족한다.





오늘도 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사람들은 두꺼운 줄기와 푸른 잎, 붉게 물드는 단풍잎과 탐스러운 열매에 감동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제대로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리는 데만 족히 오 년이 걸린다고 나무는 말한다. 그 인내의 시간을 보려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는 것이다.





뿌리가 아름다운 나무, 그 인내가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는 오늘도 겸손히 내 길을 걷는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뿌리는 더 깊어져야 하며, 나이테는 한 줄 더 천천히, 조용히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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