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양식
초계탕은 말도 먹는 거래요
나는 다섯 살이고
할아버지랑 서울 양옥집에서 같이 산다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신문을 펼치고
나는 슬리퍼를 끌고 부엌으로 간다
세숫대야에 찬물 받는 소리가
내 귀엔 하루를 깨우는 종소리 같다
“경화야, 오늘도 동국대 가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나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가방 없이 신나게 따라나선다
우리는 장충동 언덕을 올라
절 담벼락 아래 능소화 지나는 길을 걷고
캠퍼스 안에 있는 연못을 돌며 걷는다
할아버지 손은 여전히 크고 시원하다
언덕 아래 작은 식당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늘 손을 흔든다
“오늘은 초계탕 있어요
어르신 손녀랑 같이 한 그릇 드셔요”
나는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초계탕이 뭐예요?”
할머니는 앞치마를 닦으며 웃으신다
“더울 때 속을 식히는 국물이지
닭을 푹 삶아서 찢고
식초랑 겨자랑 설탕을 풀고
오이도 채 썰고
얼음 동동 띄워 먹으면
그게 바로 초계탕이야
옛날엔 말도 먹였대요
사람보다 말이 먼저 지치니까”
나는 “말이요?” 하고 눈이 동그래졌고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말도 이 국물 마셔야 달릴 수 있었지
사람도 그렇단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조심히 입에 넣었다
얼음처럼 차가운데
겨자 향이 찡했고
마지막에 단맛이 살짝 스며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코가 웃어요
근데 혀는 안 울어요”
집에 돌아와서
나는 엄마에게 오늘 배운 걸 다 말했다
“엄마 닭을 삶아서 찢어야 돼요
오이도 썰고
식초랑 겨자랑, 그리고
설탕 한 숟가락 꼭 넣어야 돼요
그거 안 넣으면 혀가 울어요
그리고 얼음! 얼음 꼭 넣어야 돼요”
엄마는 웃으며 “알았어” 하고
냉장고에서 닭을 꺼내셨다
나는 부엌 옆에 쪼그려 앉아
식당 할머니가 알려준 순서대로
꼼꼼히 말했다
“겨자는 반 숟가락만
식초는 셋
설탕은 하나
많이 넣으면 안 돼요
혀가 놀래요”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혀가 울면 안 되지”
저녁엔 우리 셋이 식탁에 앉았다
엄마가 끓인 초계탕은
식당에서 먹은 그 맛이랑 거의 똑같았다
할아버지는 국물을 마시고
“얘가 제대로 배웠구먼” 하셨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말도 이거 먹고 달렸다잖아요
나도 먹었으니까 달릴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고
엄마는 “우리 꼬마 요리사 최고” 하며 웃으셨다
그날 초계탕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식당 할머니가 알려주고
내가 엄마에게 전하고
셋이서 같이 웃으며 먹은
여름 한 그릇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숟가락 끝에 살짝 얹어서
마음속으로 천천히 떠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