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 삶는 날

나는 간장국수

by 이 경화





국수를 삶기 전, 어머니는 커다란 대야에 얼음을 가득 담아두셨다. 얼음들이 투명하게 서로 부딪히며 차가운 소리를 내자, 좁은 부엌 안은 순식간에 여름의 더위를 잊었다.


“경화야, 이거 하나 입에 물어봐.”

어머니는 작고 둥근 얼음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 위에 올려주셨다. 입안으로 들어온 얼음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동안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았다. 팔을 걷어붙이고 냄비 앞에 선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여름의 온기와 다정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국수가 익자 어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얼음물에 옮겨 헹구셨다. 흐르는 찬물 아래에서 하얗게 번지는 국수의 결, 그 위로 손끝에서 튀는 물방울까지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어머니는 작은 그릇에 맨국수를 덜어 담고,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설탕은 티스푼 끝으로 조심히, 참기름은 망설이지 않고 한 바퀴 둘렀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천천히 비벼 내 앞에 내어주셨다.


“넌 이게 좋지? 김치비빔은 아직 매워.”

그 말에는 매운맛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무 고명도 없는 그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고요하면서도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 조용히 입안에서 퍼졌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가 가장 먼저였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내 그릇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으셨다.

“맨국수도 괜찮지. 니 엄마 손맛은 늘 간이 딱 맞아.”


어머니는 다시 분주해졌다. 어른들을 위한 국수를 준비하기 위해 다진 김치를 조심스레 넣고, 오이와 양배추를 채 썰어 얹었다. 고추장은 과하지 않게 아주 조금만, 설탕도 약간만 더했다. 참기름 향이 부엌 가득 퍼졌고, 볶은 깨를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바수어 조용히 뿌렸다.


국수를 건져낸 뜨거운 물에 삶아낸 계란이 어른들 국수의 마지막 고명이 되었다. 삶긴 계란을 어머니가 반으로 갈라 올리자, 하얀자와 노른자가 김치의 붉은빛과 대비되어 식탁 위에서 작은 그림처럼 펼쳐졌다.


우리 식탁에는 늘 세 사람만 앉았다. 조용히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계절이 변할 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식사를 나누었다. 누구의 부재도 말하지 않고, 있는 이들끼리 다정히 마주하며 지냈던 그 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어른이 된 후


무심히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다 문득 손끝에서 그 여름이 스쳐 갔다. 간장국수의 담담하고 고요한 맛을 다시 떠올리며, 혼자서도 한동안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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