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들려주는 잠언
별을 즐겨 바라보는 내가 이 책에 끌린 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 무언가 오래된 인연이 불쑥 손을 내민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 문장처럼 이 책은 나를 불러 세웠다.
어릴 적부터 밤하늘은 내게 하나의 대화창이었다. 말이 없지만 말을 건네는 존재들 어두운 우주의 심연에서 빛나는 그 조용한 고백들은 내 마음 깊은 곳의 고독과 가장 먼저 마주했고 가장 오래 곁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리즈 그린의 『점성술과 융 심리학』을 만나 그 오랜 대화가 더 넓은 상징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융의 사유가 얼마나 별을 향해 열려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 별들을 단순한 운명의 기호로 보지 않고 무의식의 언어 심리적 구조물의 한 층으로 읽어냈던 그의 통찰을 아주 세밀하게 되짚는다. 나는 그동안 점성술을 멀찍이 두고 바라보는 편이었다.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믿을 수 없는 세계 그럼에도 별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은 항상 지울 수 없는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융은 점성술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언어’로 이해했다. 즉 인간의 무의식이 세상과 공명할 때 별들은 그 상징의 입김을 통해 우리의 삶에 다가온다고 본 것이다. 무의식의 구조 안에 별을 넣는다는 것 그것은 과학이 닫아버린 문을 다시 열고 인류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의 영역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리즈 그린은 이 책에서 융의 심리학과 점성술 사이의 다리를 세운다. 그 다리는 학문적이면서도 깊이 신화적이고 냉정한 분석 안에 오래된 시의 결이 살아 숨 쉰다. 나는 그 다리를 건너는 동안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내 탄생의 별자리와 그 별자리가 품었을지도 모를 내면의 상처들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위로였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설명이었다. 당신의 그 성향은 그 사건은 그 감정은 이런 별의 기운 속에서 자라난 것이었을지도 몰라요 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가장 시적인 심리학의 손길이었다.
나는 내가 점성술을 믿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점성술을 통해 나 자신을 좀 더 낯설게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인간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안쪽을 이성으로만 설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내면 설계도에 별빛이라는 부드러운 곡선을 덧그려 준다. 융이 말한 ‘공시성’ 우연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삶의 일부 장면들은 그 별빛이 말을 걸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낭만을 넘어 그 안에 놓인 상징을 내 삶과 어긋나지 않는 어떤 패턴을 조심스레 읽으려 한다.
책장을 덮은 오늘이라는 시간과 현재라는 공간에 나는 마음의 창을 열고 별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책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 어떤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기에 별이란 나의 무의식이 가장 오래 기다려온 가장 조용한 친구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