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를 물으면 부와 권력도 높은 지위도 아니고 그저 사랑하며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사랑만은 놓지 못하겠다고 그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목적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오래 생각해왔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류 같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 바람은 멈추지 않고 불어와 때로는 온기를 주고 때로는 몸을 떨게 하는 찬기를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사랑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질문은 한 줄이었지만 대답은 수많은 언어와 비언어의 결을 필요로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느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결코 핑크빛 감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황홀함도 따뜻한 봄날 햇살 같은 부드러움도 사랑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사랑은 종종 우리를 절정의 기쁨에서 가장 깊은 절망으로 끌어내리는 극단적 감정의 진폭을 품고 있다.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거친 숨결이며 때로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긴장이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숨이다.
사랑은 소유와 해방 애착과 놓아줌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상대에게 속하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타오르는 기묘한 상태.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는 열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열정은 종종 연극처럼 때로는 자기기만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상대의 결핍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 속에는 사실 내 안의 상처를 덮어보려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오만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은 때로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없는 장점을 상대에게서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자기 존재를 더 크게 느끼려 한다. 그래서 사랑은 늘 대리만족의 성격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대리만족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 만남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너와 있는 그대로의 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을 이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결핍의 시작도 사랑이고 결핍이 끝나는 자리도 사랑이다. 사랑은 결핍을 알아차리는 눈이며 그 결핍을 채워주려는 손길이다. 그리고 사랑이 떠난 뒤 우리는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무게를 깨닫는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빛처럼 남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사랑은 더없이 고결하다. 그때서야 우리는 안다. 사랑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이 손을 잡는 순간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사랑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그릇이지만 그 비어 있음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걸어간다. 그 걸음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사랑을 향한 걸음은 늘 돌아가거나 돌아오게 만든다.
진정한 사랑이란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처럼 우리 안에 남아 한 번쯤은 우리를 웃게 하고 또 한 번쯤은 우리를 울게 하며 결국엔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사랑은 우리가 가장 깊이 배우는 배움이며 가장 어렵게 놓는 놓아줌이다. 그리고 그 놓아줌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품어주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사랑의 얼굴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끝내 배우고 가야 할 가장 오래된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