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명검을 꺼내야 할 때가 있다. 무디고 닳은 날로 살아가다가도 언젠가는 번쩍 빛나는 날을 쥐어 들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예고 없이 온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말들이 엉키고 얽혀 숨이 막히는 날에도 오고, 삶의 길목에서 어느 쪽으로 발을 옮겨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날에도 온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내 마음 속 부정과 사투를 벌였다. 나를 무너뜨리는 건 세상의 칼날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나는 그림자들이었다. 오만이 고개를 들고, 편견이 시선을 흐리게 하고, 선입견이 귀를 막을 때마다 내 안의 명검은 서늘하게 깨어났다. 그것은 누군가를 겨누는 칼이 아니라 나를 향해 겨누는 칼이었다. 불필요한 욕심을 베고, 부질없는 생각을 잘라내고, 가짜 힘과 거짓된 확신을 송두리째 잘라내는 칼.
삶의 균형이 무너질 때에도 명검은 손에 쥐어진다. 내 신념이 흩어지고, 철학이 무너질 때, 그 칼은 단호하게 날을 세운다. 나는 그 칼을 사랑하지만 두려워한다. 잘못 쓰면 스스로를 다치게 하고, 올바르게 쓰면 다시 숨을 쉬게 하는 칼.
칼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오며 나는 깨달았다. 어떤 칼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을 가른다. 죽음을 향하던 마음을 잘라내고, 절망에 붙잡힌 영혼을 풀어주고,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칼. 그것이 나에게는 보검이었다. 나는 그 보검을 특별한 곳에서만 발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시장 한구석에서 얼음 위에 반짝이는 갈치의 은빛에서 심해의 보검을 보았고, 들길에서 강아지풀의 부드러운 잎사귀에서 명검의 숨결을 느낀 적도 있다. 어떤 날은 하늘빛이 유난히 깊어 그 빛 속에서 칼의 날을 보았고, 어떤 날은 사람의 눈동자에서 그 칼의 투명한 빛을 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주에 칼을 들고 왔으니, 무 하나쯤은 썰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무수한 날들이 무심히 흘러가는 동안 나를 지탱해준 것은 그 사소한 유머였다.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농담 같은 다짐은, 사실 명검을 쥔 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언약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견딘 밤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모든 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명검은 늘 전투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끔은 부엌에서 채소를 써는 칼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린다.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삶을 이어주는 밥 한 끼를 준비하는 칼날은 전쟁터의 칼날보다 더 귀하다. 내가 오늘 들고 있는 명검이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한 것이길 바란다.
오늘은 어떤 채소를 썰어볼까. 무를 얇게 저며 국물 속에 풀어 넣을까, 아니면 양파를 송송 썰어 달큰한 향을 퍼뜨릴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써느냐가 아니라, 칼을 쥔 손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다. 명검은 그렇게 마음을 담아야만 빛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명검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것을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채 평생을 살고, 어떤 이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어 스스로를 단련한다. 나는 그 칼이 늘 나를 위한 칼이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이 아니라, 내 안의 혼탁함을 베어내는 칼. 그리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칼을 들어도 좋다.
명검은 서랍 속에 숨겨둘 수도, 손에 쥐고 날마다 연마할 수도 있다. 나는 오늘도 그 칼을 가만히 꺼내어 빛에 비춰본다. 날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칼집에 넣는다. 오늘은 칼을 들고 어떤 야채를 썰어볼까. 그 단순한 질문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