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를 이으면서

by 이 경화


바늘에 실을 꿰어 조각천을 하나하나 이어 붙인다. 손끝에서 서로 다른 빛깔과 질감의 천들이 만난다. 까만 천은 지난 세월의 깊은 밤을 닮았고, 노란 천은 봄날의 햇살을 닮았다. 분홍빛은 설레던 청춘 같고, 거친 남색은 눈물로 얼룩진 어제를 닮았다. 이 조각들이 만나 하나의 보가 되어가는 과정은, 흩어져 있던 내 삶의 시간들이 다시 엮여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삶은 늘 조각난 상태로 다가온다. 기쁨과 슬픔이 따로 떨어져 다가오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조각들은 서서히 꿰매진다. 손에 잡히는 바늘은 때로는 인연이고, 때로는 기억이며, 때로는 고통이다. 그렇게 이어진 삶의 조각들은 마침내 하나의 무늬가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자리마다 나의 숨결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씨실과 날실이 모여야 천이 되듯이, 하루하루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 하루가 고통이었든, 기쁨이었든, 그 순간이 있어 지금의 내가 짜여졌다. 어린 시절 허기졌던 밥상의 기억도,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던 청춘의 나날도, 글로 울음을 삼키던 지난밤들도 모두 조각이 되어 내 삶에 덧붙여졌다. 나는 조각보를 잇듯 그날들을 꿰매며 오늘에 이르렀다.


천을 고르다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두운 빛깔이 있다. 처음엔 빼고 싶어진다. 그러나 막상 밝은 색 옆에 두었을 때, 그 어두움은 오히려 밝음을 돋보이게 한다. 삶도 이와 같음을 안다. 좌절과 실패, 외로움과 눈물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가장 밝은 순간 옆에 놓일 때 비로소 무늬가 된다. 이제야 안다. 어두움조차도 내 인생의 조각보를 빛내주는 필수의 색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바느질이 서툴러 땀을 아주 촘촘히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천을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바느질은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힘으로 해야만 천이 울지 않고, 이면과 저면이 고르게 맞닿으며 아름답게 이어진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 사이의 인연도 너무 세게 조이면 서로가 상처가 되고, 너무 느슨하면 금세 흩어져 버린다. 적절한 간격과 알맞은 힘이 필요하다. 그래야 숨이 트이고, 오래 간다.


어두운 색은 밝은 색을 덧대줌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밝은 색은 어두운 색을 품어주며 더욱 깊은 아름다움이 된다. 서로 다른 색이 견주지 않고, 덧대고 품어줄 때 비로소 하나의 무늬가 완성된다. 조각보 하나를 이어가며 나는 여러 층위의 다양성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인생 또한 밝음과 어두움,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가 서로를 떠받치며 한 폭의 무늬를 짜내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조각보를 이으며 나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바늘끝에서 이어진 천 조각들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지난날의 내 삶이었고, 그 무늬가 마침내 한 장의 보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한바탕 크게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슬픔의 눈물도, 탄식의 눈물도 아니었다. 내가 지나온 고통과 좌절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모든 조각이 서로를 받쳐주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음을 깨닫는 순간의 눈물이었다. 그것은 참된 기쁨의 눈물,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삶의 무늬 앞에서 터져나온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살며 때때로 조각보를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작업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고 마음에 품었다. 그런데 내 서툴기 그지없는 졸작 같은 처녀작을 보시고, 비단 한 무더기를 선뜻 보내주신 #쌈지사랑님 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망설이며 바늘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삶은 이렇게 뜻밖의 선물로 내 앞에 다가온다. 이런 고운 인연은 또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 그 또한 하나의 조각이 되어 내 삶의 보 속에 덧대어졌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비단을 건네는 손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내 작은 정성이 또 다른 인연에게 덧대어져 새로운 무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은 홀로 짜는 천이 아니라, 서로의 조각을 나누며 이어가는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고운 인연을 품어 다시 건네는 순간, 삶은 한 겹 더 깊어지고, 조각보는 한층 더 따뜻해진다.


조각보를 이으며 나는 배운다. 인생은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이 서로를 감싸며 한 폭의 무늬가 되어가는 일임을. 기쁨은 슬픔 곁에서 더욱 빛나고, 슬픔은 기쁨 옆에서 깊어져 간다. 실패는 성공을 떠받치고, 성공은 실패를 품으며 의미를 얻는다. 서로 다른 빛깔이 맞물리며 무늬를 이루듯, 인생의 조각들도 그렇게 하나의 길이 되고 하나의 보가 된다.


나는 이제야 안다. 조각보는 단순히 천을 잇는 일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과 인연을 꿰매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바느질 하나에도 눈물이 맺혔고, 울음 속에서도 감사가 터져 나왔다.


언젠가 나의 마지막 날에도, 내 삶의 모든 조각이 고이 이어져 한 장의 따뜻한 보로 덮이기를 기도한다. 그 보가 나를 감싸듯, 내가 남긴 무늬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덮어주는 따뜻한 조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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