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를 완성하면서

날마다 삶의 조각들을 기워 꿰메며

by 이 경화


천이 이어지려면 바늘이 먼저 천을 통과해야 한다. 그 통증을 견뎌야 실이 그 자리를 메우며 길을 만들어 낸다. 삶도 그렇다.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바늘 같은 아픔이 없었다면, 실은 결코 지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상처가 있어야 비로소 봉합이 가능하고, 그 봉합이 새로운 무늬를 낳는다.

나는 오랫동안 그 단순한 진실을 모른 채 살았다. 고통은 피해야 할 것이고, 눈물은 감추어야 할 것이라 여겼다. 바늘 끝이 찌를 때마다 왜 나만 아픈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묻곤 했다. 하지만 조각보를 꿰매는 동안 나는 알았다. 아픔은 내 삶을 찢어놓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을 이어주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한 땀 한 땀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실이 채워지고, 천과 천은 떨어져 있던 경계선을 잃어버린다. 그 경계는 상처의 자국이자 동시에 새로운 무늬의 시작이었다. 나는 바느질을 하면서 내 삶의 경계와 틈새들을 떠올렸다. 이해받지 못한 순간들, 버림받았다고 느낀 기억들, 너무 깊이 사랑했기에 상처받았던 시간들. 그 모든 틈새마다 실이 지나가듯, 내 마음도 조금씩 봉합되는 듯했다.

바늘은 앞장서 통증을 남기지만, 실은 그 뒤를 따라 위로를 심는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상처 입히고 떠난 뒤,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내 상처에 손을 얹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바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바늘이 먼저 지나가지 않았다면, 실은 결코 자리를 메우지 못했을 테니까.



바느질은 서두를 수 없다. 실을 급히 잡아당기면 천이 우그러지고, 너무 느슨하면 금세 풀려버린다. 적절한 힘과 리듬이 필요하다. 내 삶도 그랬다. 서두르며 억지로 이어가려 했던 관계들은 금세 터져버렸고, 방치하듯 느슨했던 시간들은 흩어져 의미 없이 사라졌다. 조각보를 꿰매며 나는 배웠다. 인생에도 간격이 필요하고, 관계에도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바느질이 서툴러 땀이 지나치게 빽빽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천을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느 순간 일정한 간격으로, 알맞은 힘으로 바늘을 찔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천은 울지 않고, 이면과 저면이 나란히 만나 고르게 이어졌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 사이의 인연도 이와 같지 않은가. 너무 가까이 붙잡으면 서로 상처가 되고, 너무 멀리 놓아두면 금세 잊혀진다. 일정한 간격, 알맞은 힘, 그것이 오래 이어가는 길이었다.

나는 실이 지나가는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 마음의 오래된 상처들을 떠올렸다. 거기에도 마땅한 리듬이 필요했다. 너무 서둘러 치유하려 하면 상처는 오히려 깊어지고, 내버려두면 썩어버린다. 바느질이 가르쳐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고통과 치유는 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바늘이 통과한 뒤 실이 메워주듯, 아픔 뒤에는 위로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

실은 단순히 천을 이어주는 역할을 넘어서, 새로운 무늬를 만든다. 서로 다른 색깔의 천이 실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전혀 다른 빛깔이 탄생한다. 그 순간 나는 내 삶의 아픔 또한 무늬였음을 알았다. 고통의 자국은 단지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다른 조각과 만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낳는 시작이었다.


조각보를 완성해 가는 동안 나는 자주 손끝의 작은 따가움을 느꼈다. 바늘이 미끄러져 손가락을 스칠 때마다 피가 맺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피조차도 천 위에 작은 흔적으로 남아, 오히려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내 삶의 아픔도 이와 같지 않은가. 아픔을 완전히 지우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무늬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천의 앞면과 뒷면은 다르다. 겉에서 보이는 무늬는 화려하지만, 이면에는 울퉁불퉁한 매듭과 뒤엉킨 실이 가득하다. 나는 그 뒷면을 보며 스스로의 내면을 떠올렸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마음속은 매듭투성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매듭이 있기에 앞면은 단단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내 삶의 뒤엉킨 감정과 상처 또한 그런 매듭이 아니었을까. 어지럽고 지저분해 보여도 결국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음을, 나는 조각보를 통해 알았다.

내면의 상처는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바느질은 오히려 그 자리를 드러내며, 그 위에 새로운 실을 얹어 준다. 그래서 나는 상처를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그 위에 다른 색을 덧대어 보기로 했다. 그 순간, 오래된 흉터가 새로운 무늬의 중심이 되었다.




조각보의 완성은 단지 천이 이어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내면의 상처들이 길을 내어 서로 이어졌음을 뜻했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통증은 있었지만, 그 뒤를 따라간 실이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위에서 다른 조각들이 만났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조각보를 완성하며 알았다. 치유는 아픔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다른 빛깔과 함께 이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두운 색은 밝은 색 옆에서 빛났고, 밝은 색은 어두움을 품으며 더 깊어졌다. 내면의 고통도, 기쁨도 그렇게 서로를 감싸며 무늬를 완성했다.

마지막 땀을 넣으며 나는 기도했다. 언젠가 내 삶도 이렇게 완성된 한 폭의 보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덮어주는 따뜻한 무늬가 되기를. 내가 견뎌낸 상처가 길이 되어 다른 이의 발걸음을 지탱해 주기를.

조각보를 완성하면서 나는 배운다. 상처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자리라는 것을. 그 길 위에서 삶은 이어지고, 무늬는 깊어지며, 결국 한 장의 따뜻한 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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