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준비
버섯 편육, 명절의 또 다른 얼굴
명절 음식이라 하면 기름에 지글지글 부친 전과 노릇하게 익은 동그랑땡, 달큰하게 졸여낸 갈비찜, 한 접시 가득 담아낸 잡채가 먼저 떠오른다. 상 위에는 늘 고기와 기름이 주인공처럼 놓인다. 그것을 먹고 나면 맛은 진하지만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도 명절의 풍경이다. 그러나 느끼한 음식만 명절 음식은 아니다. 나는 올해 명절 상차림에 담백하고 숲의 향기를 담은 한 접시를 준비했다. 바로 버섯 편육이다.
편육이라 하면 흔히 돼지고기를 삶아 눌러낸 것을 떠올린다. 얇게 썰어내어 간장 양념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난다. 그런데 그 자리에 버섯이 대신한다면 어떨까. 느타리와 표고, 팽이와 생 목이버섯을 차곡차곡 눌러 익히면 고기의 묵직한 맛 대신 은근한 담백함이 스며든다. 느타리는 결이 살아 있어 씹을 때마다 편육다운 식감을 주고, 표고는 깊은 향으로 전체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팽이는 가늘고 부드러워 다른 결을 연결해 주고, 생 목이버섯은 쫄깃함으로 씹는 재미를 더한다. 네 가지 버섯이 어우러져 만든 편육은 고기 못지않은 풍요로움으로 명절 상차림에 새로운 빛을 더한다.
기름기가 번들거리지 않아도 충분히 풍성하다. 숲내음을 머금은 듯 담백하고 구수하며,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은근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겨자 양념장에 살짝 적시면 코끝이 찡한 매운맛이 담백함을 끌어올리고, 초장에 곁들이면 달큰한 산미가 느끼한 음식을 먹은 뒤 입안을 환기해 준다. 전과 갈비찜 옆에서 버섯 편육이 놓이는 순간, 상차림에는 숨은 쉼표가 생긴다. 무겁던 식탁에 한 점의 가벼움이 더해져 균형이 맞춰진다.
이 버섯 편육은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또 다른 옷을 입혀도 훌륭하다. 오이와 게살, 얇게 썬 양파, 살짝 데친 콩나물, 그리고 파인애플을 더해 겨자 소스를 곁들이면,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변신한다. 상큼하고 시원한 냉채 속에서 버섯 편육은 주재료가 아닌 조화로운 악기처럼 빛난다. 버섯의 식감은 콩나물의 아삭함과 만나고, 파인애플의 산뜻한 단맛과 게살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합주를 만들어 낸다. 겨자 소스가 그 모든 맛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명절 음식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명절은 전통을 지키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변화를 허락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해마다 같은 음식을 반복하며 전통을 이어가지만, 그 속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순간 전통은 더 건강해진다. 버섯 편육은 바로 그 작은 변화였다. 기름진 음식들 사이에서 담백함으로 균형을 잡아주고, 때로는 상큼한 냉채로 확장되며 명절 상차림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나는 버섯 편육을 준비하며 내 삶도 돌아보았다. 삶이 늘 화려하고 진할 필요는 없다. 은근하고 담백한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느타리의 단단한 결, 표고의 깊은 향, 팽이의 부드러움, 목이버섯의 쫄깃함이 어울려 하나의 편육이 되듯, 우리의 기억도 저마다 다른 질감과 색을 지니며 결국은 하나의 무늬를 이룬다. 버섯을 차곡차곡 눌러내며 나는 내 삶의 파편들이 겹겹이 이어져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과정을 본 듯했다.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내지 않아도, 기름장이 번들거리지 않아도, 명절의 한 자리를 충분히 빛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그것이 버섯 편육이다. 나는 그 소박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풍요를 느꼈다. 담백함은 결핍이 아니라 균형이었고, 단순함은 빈약함이 아니라 깊이었다.
명절 상차림은 결국 마음을 나누는 자리다. 그 마음이 기름지고 느끼해야만 따뜻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숲내음을 닮은 담백한 음식이 더 깊은 위로와 평안을 준다. 손님들이 버섯 편육을 맛보며 “이렇게 깔끔한 맛도 좋다”고 말할 때, 나는 작은 기쁨을 얻는다. 그것은 음식이 주는 기쁨이자, 삶이 균형을 찾을 때 느끼는 기쁨과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느끼한 명절 음식만 명절 음식은 아니다. 담백하고 구수하고 향긋한 버섯 편육 또한 명절의 얼굴이다. 초장에 찍어도, 겨자 소스에 곁들여도, 냉채로 변신해도 빛을 잃지 않는 이 음식은, 전통과 변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숲과 땅이 기른 네 가지 버섯이 하나 되어 편육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서로 다른 기억과 인연이 모여 결국 하나의 큰 무늬를 이룬다. 그 무늬가 조용히 빛나는 순간, 명절은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