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아닌 식구
해마다 명절이 되면 마음을 나누는 食口가 있어요. 혈연 지연이 아닌 가슴을 기대는 사람들 입니다. 저는 매년 명절때마다 예수회 신부님과 부모없는 청년들의 하루 엄마가 되어, 그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반겨 줍니다.
설 명절때 만났고, 추석때 다시 만나요. 제가 부모없이 자라서 그런지 이 청년들을 명절때마다 불러 음식을 내어주고 덕담을 건네고, 저도 복을 짓고 있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제게 이렇게 따뜻한 식구들을 보내주셔서 말이지요. 그래서 명절은 이제 더이상 외로운 날이 아니에요. 왜냐면 저에게도 식구가 늘 찾아오니 말입니다. 며칠 전 아니 한달 전부터 메뉴를 구상하고 어떤걸 먹여줄까 행복한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지냈습니다.
올 추석에는 직접 만든 버섯 묵으로 냉채를 만들었는데 맛이 생각보다 너무 훌륭했어요. 네가지 버섯을 끓이고 한천 가루를 넣어 굳힌 묵이 이렇게 훌륭한 메인 요리로 탄생하다니 정말 감격 그 자체 입니다.
어제 여섯종류의 전을 준비해서 굽고, 나물을 삶고 무치고 나박김치를 담가 두는 제 손이 정말 이뻐보였습니다.
아참, 육전을 부쳤는데요. 소고기 불고기랑 겹치니 육전은 돼지고기로 했는데 이게 또 신의 한 수였어요. 돼지고기를 핏물을 제거하고 맛술을 발라 재운 후, 찹쌀가루를 입혀서 기름에 지져 냈어요. 잘 익은 육전을
먹기 좋게 반으로 잘라 접시에 빙 두르고, 그 가운데 맵싹하게 참나물을 무쳐 얹었지요. 참나물에 육즙 가득한 육전 한 장 싸 먹는데, 아니 이거 끝없이 자꾸 들어 가네요.
그리고 신부님께 가장 칭찬을 들은 나박김치 이건 기름진 명절음식과 짝꿍 김치에요. 나박김치 없으면 명절음식이 아니죠. 기름진 음식 사이에 국물을 한 수저씩 떠 넣고 입을 리프레시 시키면 전도 그렇게 기름지지 않아요.
송편은 오색 송편을 준비 했어요. 밥솥에 찜보를 깔고 물 약간 참기름 두방울 떨어뜨리고 만능찜으로 20분 쪄 냈더니 너무 훌륭한 비쥬얼이에요.
잡채는 당면보다 야채를 더 넣어야 다 먹을때까지 야채가 부족하지 않아요. 그리고 끓는 양념에 당면을 넣어 조리듯 하다가 볶은 야채를 투하하고 불 끄고 잔열로 볶듯이 덖어내는게 저만의 방법이랍니다.
삶은 오징어랑 도라지를 같이 무쳐서 명절음식의 느끼함을 또 한번 잡아 주었어요. 추석은 이렇게 지나고 웃음이 번지는 식탁에서 와인 한 잔 나누고, 식사 기도를 하는 순간은 정말 장엄해요.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것 같은 그 따뜻한 식탁에 우리가 또 이렇게 둘러 앉았으니 올 한해도 이만하면 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