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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대하여

가을이 준 깨달음

by 마르치아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진정으로 아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는 한계는 부정의 끄트머리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의 시작이며 불가능의 디딤돌이며 할 수 없는 일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다. 인간은 한계를 깨닫는 순간부터 성숙해진다. 끝이 있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비로소 다음 길이 열린다. 겸손이란 자신을 무한히 낮추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드높이는 일이다. 그래서 겸손과 비굴함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차이는 가을빛과 그림자의 온도만큼 다르다.


나는 지금 낙엽이 쌓인 길가에서 노란 씀바귀를 바라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이 작은 꽃은 피어 있다. 햇살은 짧고 바람은 길지만 꽃은 흙을 붙잡으며 고요히 선다. 땅을 기어 살아가지만 천하지 않다. 오히려 땅 가까이에서 생명을 얻고 낮은 자리에서 빛을 낸다. 겸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것. 작고 연약하지만 끝내 피어나려는 의지. 나는 이 작은 꽃에서 인간의 존엄을 본다.


하늘의 별을 세는 일과 바닷가의 모래를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 부질없음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아주 작은 생각들이 모여 의식이 되고 그 의식이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든다. 한계를 모른 채 허황된 꿈을 좇는 자는 바람에 흩어진 낙엽처럼 방향을 잃는다. 그러나 자신의 깊이를 아는 자는 낮은 곳에서 뿌리를 내린다.


가을은 스스로를 버려 숲을 이루는 계절이다. 나무는 잎을 잃으며 더 단단해지고 바람은 차가워지며 더 맑아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덜어낼 때 오히려 자신을 얻는다. 비워야 보인다. 낮아져야 넓어진다.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이 마음의 길을 밝힌다.


나는 때때로 내 안의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 감사가 피어난다. 완전하지 않기에 더 사랑할 수 있고 다 닿지 못하기에 더 그리워할 수 있다. 부족함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다. 여백이 있어야 생명이 숨을 쉰다. 인간의 한계는 하느님이 남겨둔 여백이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모든 것은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사랑만은 예외다. 사랑은 그 자체로 계절이며 시간의 끝에서도 스스로를 다시 피워내는 생명이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와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순환이며 또한 영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내 한계를 알아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기를. 낮아진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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