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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음, 나를 안다

해미 일락사 산신제

by 마르치아

해미 상왕산 자락에 자리한 일락사는 신라 문무왕 3년 의현 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천삼백 년의 역사를 품은 고찰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기도와 시간이 이 절을 스쳤고 돌담과 기와마다 수많은 손길이 지나갔다. 아침 안개 속의 일락사는 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절집을 감싸고 종소리가 산의 골짜기를 따라 흘렀다.




이곳은 단지 불교의 도량만이 아니었다. 소리의 고향이자 예술의 터전이었다. 조선시대 중고제 판소리의 명창 현음 방만춘이 이곳에서 득음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를 기리고자 일락사에서는 매년 ‘현음 산신제’를 열어왔다. 올해로 열아홉 번째를 맞은 산신제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소리와 기도와 인간의 마음이 하나 되는 축제였다.




가을빛이 산허리를 덮고 스님들이 준비한 제상이 산신각 앞에 차려졌다. 귤과 배와 사과와 밤 그리고 정갈한 떡이 가지런히 놓였다. 초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보살님들의 손이 그 불꽃을 감쌌다. 오색의 번이 하늘과 땅을 잇는 다섯 줄의 노래처럼 바람 속에 흔들렸다. 붉음은 생명의 기운 파랑은 하늘의 숨결 노랑은 땅의 기운 흰색은 맑은 진실 검정은 어둠 속의 인내였다. 그 다섯 빛깔이 섞여 산신각의 처마를 물들이고 있었다.




드디어 스님들의 축원이 시작되었다. 낮은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 산신각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소리는 골짜기를 타고 멀리 퍼졌고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스님들의 합창 같은 축원은 하늘로 오르는 연기처럼 서서히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기도는 소리가 아니라 숨이었다. 그 숨이 우리 안의 먼 곳까지 닿을 때 마음이 고요해졌다.




청무스님은 좌종과 싱잉볼 앞에 서셨다. 햇살이 스님의 가사 위에 내려앉고 그 앞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그릇들과 묵직한 좌종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스님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두 손으로 망치를 들어 종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스쳤다. 둥 하고 울린 그 소리는 바람보다 깊고 물보다 맑았다. 공기가 떨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어서 스님은 몸을 조금 옆으로 돌려 싱잉볼의 가장자리를 따라 손끝으로 원을 그렸다. 소리가 금빛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그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스님의 호흡이었고 그 호흡은 곧 우리의 호흡이었다. 스님은 한 손으로 좌종을 울리고 다른 손으로 싱잉볼을 돌리며 하늘과 땅 인간과 바람의 울림을 하나로 이어주셨다.




그 순간 산신각은 거대한 악기가 되었다. 모든 기도와 숨과 시간이 하나의 음으로 진동했다. 스님은 연주를 멈추지 않으셨다. 손끝의 움직임이 멈추면 그 자리를 침묵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 침묵마저 울림이 되었다.




그 고요 속에서 청무스님이 입을 여셨다.


“소리는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 들을 준비가 되면 그때 비로소 들리지요. 그러니 지금 이 울림은 여러분 안에 머무는 중입니다.”




그 말씀은 바람을 타고 처마 밑의 그림자를 흔들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기도의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며 그 침묵은 언제나 사랑의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스님은 다시 종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이전보다 더 부드럽고 깊은 울림이 골짜기를 넘어 하늘로 퍼졌다. 내 마음의 벽에 그 소리가 닿자 눈물이 흘렀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 울림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지 마세요. 모든 건 사라지기 위해 왔고 사라짐 안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 말은 종소리보다 더 길게 남았다. 나는 이해했다. 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사라짐을 붙잡지 않고 떠나는 것까지 사랑으로 품는 일.




싱잉볼의 여운이 사라지자 좌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하늘과 골짜기와 사람의 가슴이 동시에 떨렸다. 바람이 깃발을 스치며 지나갔다. 오색의 번이 햇살 속에서 춤추듯 흔들렸다. 그 움직임이 마치 사람의 숨결 같았다.




스님은 천천히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러분이 소리를 이어가세요. 당신 안에도 같은 울림이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산신각의 하늘이 더욱 푸르게 빛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싱잉볼의 맑은 떨림이 여전히 내 가슴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안아주는 소리였다. 부족한 나를 꾸짖지 않고 흔들리는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싸주는 소리였다.




그날 산신제는 내게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합창이었다. 스님들의 축원이 기도를 열고 좌종의 울림이 영혼을 깨우고 싱잉볼이 마음을 안아주며 스님의 말씀이 우리 안의 빛을 일깨웠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며 나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괜찮다. 너는 이미 너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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