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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가르쳐준 가르침

by 마르치아




사람은 첫 호흡과 함께 이별을 경험한다. 아직 세상의 냉기를 알지 못한 채, 따뜻한 자궁이라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밀려나듯 떨어져 나오며 세상이라는 낯선 빛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 첫 울음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에 내는 첫 인사이자, 동시에 삶의 고통을 예고하는 첫 이별의 신호였다.




따뜻함 속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는 그 순간부터 분리를 배우며 살아간다. 그것은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타의의 운명이었고, 세상에 나와 첫 숨을 들이마시며 인간은 이미 상실의 감각을 몸으로 배운다.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탯줄이 끊어지던 그 첫 이별의 순간 이후, 인간은 평생 수없이 많은 이별을 반복한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처음부터 이별을 배운 존재였다. 그것은 마치 원죄와도 같아서, 죄를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죄성으로 향하는 인간의 본성과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별을 익히고 세상에 던져진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이별은 이미 태생에 새겨진 기억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고, 다시 연결을 원하고, 분리된 상태로 남겨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사랑은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며, 우리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이별과 분리를 경험하며 태어난 인간은, 살아가며 또 다른 수많은 이별을 겪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별 속에서도, 우리는 그것이 왜 그렇게 낯설지 않은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깨닫는다. 이별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되돌려놓는 신의 개입이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이가 들어가며 비로소 알게 된다. 이별이란 신이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차가운 가르침이라는 것을.




젊은 날의 나는 그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크게 사랑받기 위해, 더 깊이 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허기와 갈망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이제 돌이켜보면, 만약 인생을 통틀어 이별 없는 삶을 살았다면 나는 과연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별이 없었다면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그 온기가 얼마나 인생을 데워주는 불씨였는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그 상실의 자리에서 배워왔다. 잃음이 나를 성장시켰고, 그리움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엄마의 젖을 늦게 뗐다. 미숙아로 태어나 엄마의 품과 젖에 대한 애착이 유난했다. 이가 난 세 살이 되어서야 엄마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극단의 처방을 내리셨다. 내가 젖을 빨기 전에 젖꼭지에 연고를 바르시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쓰다는 걸 배웠다. 그 쓴맛은 단지 약의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끝에서 마주한 불가피한 상처의 맛이었다. 엄마는 울지 않으셨고, 나는 목이 터져라 울었다. 그 울음 속에서 나는 세상과 처음으로 떨어져 나왔다.



그 후로 나는 아마도 줄곧 그때의 따뜻함을 찾아 헤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품에서 그 온기를 다시 느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이별의 그림자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별을 그 쓴맛에 비유하며 견딘다. 그 쓴맛을 알기에 사랑의 단맛에도 쉽게 취하지 않는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스며 있고, 모든 따뜻함에는 언젠가 식을 온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그 온기를 찾아 손을 내민다. 그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아주 옅게나마 이별을 미리 준비해둔다. 그것은 비관도, 체념도 아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음의 예의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하고, 시간은 모든 관계를 조금씩 낡게 만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영원을 믿지 않는다. 그 대신 찰나의 온도를 믿는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의 눈빛, 그 안에서 반짝이는 진심 하나를 믿는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더라도, 그 따뜻함이 나를 조금은 덜 쓰라리게 해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만남을 더 조심스럽게 대하고, 이별을 더 조용히 받아들인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야 안다. 소모적인 관계는 어느새 흩어지고, 한순간을 만나더라도 진실한 관계만을 남기려는 노력이 내 삶의 방향이 되었다는 것을. 예전에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 손끝으로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이제는 진심이 닿지 않는 관계를 놓을 줄 안다. 그게 이별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지혜였다. 사람을 붙잡는 대신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온기와 말, 그때의 눈빛 하나를 조용히 간직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모든 관계는 그렇게 지나가도 마음에 남은 진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그 얼굴을 지우고 이름을 잊게 만들지라도, 한때의 숨결과 온기는 내 안 어딘가에서 여전히 미세하게 살아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내 삶의 결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내 안에 다른 형태로 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이별을 배우며 산다. 매번 이별 앞에서 나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깊어진다.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떠남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내 곁을 스쳐 가도 이제는 그것을 하나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은 머물기도 하지만, 떠남으로써 나를 단단하게 다듬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이별은 여전히 쓰다. 그러나 그 쓴맛 속에서 나는 사람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랑은 이제 소유가 아니라 이해가 되었고, 붙잡음이 아니라 놓아주는 용기가 되었다. 떠나간 이들의 자리를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그 부재를 견디는 마음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이끄는 시작이라는 것을. 이별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랑이 머무는 또 다른 방식이다. 우리가 흘려보낸 모든 인연과 시간들이, 결국엔 우리를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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