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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한다는 의미

by 마르치아

"오십이 넘으니 내 취향을 이제서야 이해하고 알게 된다."






젊을 때는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을 따라 좋아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좋아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마음이 고요히 반응하는 것들만 남았다. 그건 나의 진심이자 나의 방향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천천히 묵상하게 된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좋아함을 순간적인 감정이라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훨씬 오래되고 복합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좋아한다는 그 감정에 대해 ‘정확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좋아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늘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계산된 애정이며, 진짜 좋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려는 좋아함은 단순하지 않다. 명징하지만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하지만 정의되지 않는 빛이다.





나는 좋아하다라는 감정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오감이 느끼는 감각의 층에서 시작해, 그를 떠올렸을 때 생기는 마음의 평온과 안정의 층으로 이어지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 끌림이 있다. 마치 오래된 인연처럼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감각, 그것이 내가 말하는 좋아함이다. 좋아함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기억에 닿는 감각이다.




좋아함은 결코 순간적이지 않다. 시간과 공간의 겹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빛을 내는 프리즘처럼 다채롭다. 그 빛이 약하게 굴절되어도 좋고, 때로는 나를 비추어 나 자신을 투영해도 좋다. 그 빛은 강렬함이 아니라 지속으로 존재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발광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빛을 품은 사람을 좋아한다. 실수와 좌충우돌을 겪고, 상처와 회한을 통과하면서도 여전히 실낱같은 빛 한 줄기를 간직한 사람. 수없이 부서지고 깎여도 제 빛을 잃지 않는 사람. 그 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투명하고, 눈부시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런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움직인다. 그는 생의 부스러기 속에서 자신만의 온도를 지켜낸 사람이다.





살면서 나는 트윈플레임이라 부를 수 있는 몇몇 인연을 마주했다. 첫눈에 상대는 꼭 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마치 오랜 시간 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영혼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그 감정은 불꽃이 아니라 파문이다. 영혼이 부딪히고 공명하면서 울려 나오는 배음이 내 온몸을 전율하게 한다.




그 배음이 있는 인연은 함께 있지 않아도 감각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람 한 줄기나 새벽의 냄새 속에서 그 사람의 존재가 희미하게 진동한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파동이며, 관계가 아니라 영혼의 잔향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 배음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듣는 일이다.



결국 오십 년이 넘어 알게 된 진실은 이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다. 좋아한다는 건 그 영혼의 배음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꺼내어 듣는 일이다. 좋아함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빛은 우리를 타인에게로 이끌지만, 끝내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배음 속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울린다. 좋아한다는 건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진동으로 남아,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오십이 넘어 깨달은, 좋아한다는 감정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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