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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주는 교훈

by 마르치아




언젠가 아픔 때문에 괴로운 나날들이 있었다.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상처가 지나간 자리가 그렇게 섧고 쓰라릴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던 그 흠집은 시간이 지나며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저며왔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기보다 왜 상처받았는가를 끝없이 묻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상처의 크기가 아픔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받아들일 마음의 그릇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는 걸. 상처가 스친 자리에 바람이 불고 시간이 데펴주니 그 상처는 아물어 갔다. 누군가의 위로보다 더 깊은 치유는 세월의 온기 속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나는 알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도 아물 수는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문 자리는 다시 살아 있는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




살다보면 상처를 받게 된다. 그것이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사람은 생에 있어서 늘 상처를 받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도록 운명지어졌다. 상처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때로는 깊이 베이고 때로는 스치듯 지나가지만 결국 그 흔적은 우리 안에 무늬가 된다. 다른 이를 대할 때도 내 안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불현듯 오래된 상처가 되살아나고 그때마다 나는 아직 덜 아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처 덕분에 타인의 고통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상처는 나를 연약하게 하지만 그 연약함이 곧 연민의 씨앗이 된다.





그 상처가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굳어진다. 마음은 그것을 보호막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감정의 결빙이다.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냉기 속에서 나는 점점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대신 느끼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단단해진 마음은 안전하지만 동시에 사랑이 스며들 틈도 잃어버린다. 사실 사람이 등을 돌리는 순간은 이런 굳은살의 벽 때문이다. 상처가 많을수록 마음은 더 견고해지고 그 견고함은 곧 고립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 식는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상처들이 굳어 더 이상 손을 내밀지 못하게 할 뿐이다.




이 상처 때문에 그리고 상처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은 등을 돌린다. 그러나 그 두터운 벽은 안전하지 않다. 벽 안쪽에는 여전히 울음이 있고 닿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무리 단단히 감싸도 그 안에서는 외로움이 새어 나온다. 결국 그 벽은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과 분리시켜 버린다. 그 벽을 오랫동안 쌓아두게 되면 진실과 멀어진다. 진심으로 울고 웃던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나조차 내 감정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무사하지만 그 속에는 온기가 없다. 벽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던 진심을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 상처는 상대와의 상처가 너무 같아서 받는 상처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처럼 마주 선다. 그때의 고통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닮은 상처의 공명이다. 상처는 내 안의 옹이였다. 그 옹이가 상대에게도 있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괴로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상처의 옹이를 보고 흠칫 놀란다. 누군가는 그것을 흉터라 부르고 누군가는 약점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옹이는 견디며 살아온 시간의 증거이자 한 존재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버텨온 흔적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옹이가 아예 없는 멋대가리 없는 사람도 때론 만나게 된다. 그들의 말은 가볍고 그들의 웃음은 깊이가 없다. 상처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그래서 그들은 쉽게 다치게 하고 쉽게 잊는다. 그들은 깨끗하지만 아직 삶의 온도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그들은 너무 많이 다쳤기에 이제는 자신을 먼저 지키려 한다. 원래 배려라는 감정은 상대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상처를 깊이 겪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통에 길들여져 타인의 아픔에는 서툴러진다.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이 오래 지속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점점 무뎌지고 사랑의 감각을 잃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 상처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 벽을 허물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 벽을 쌓는 건 쉬웠다. 한 번의 오해, 한 번의 실망, 몇 번의 눈물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벽을 무너뜨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상처를 마주할 용기, 다시 사람을 믿을 용기, 다시 사랑할 용기 말이다. 벽을 허문다는 건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게 아니다. 그건 아직도 나는 사랑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 아픔 위로 피어나는 용서의 빛이 결국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상처의 벽을 허물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흩어진 벽돌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그 빛이 오래된 마음의 그림자까지 데워준다. 나는 이제 안다. 상처는 끝이 아니라 다시 사랑을 배우는 문턱이라는 것을. 그 문턱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상처를 많이 건너온 발걸음일수록 삶에 있어서는 가벼움이 있다. 상처와 수없이 화해하고 상처의 벽을 허물고 나온 발걸음이라 그러하다. 상처와 수없이 만나고 주저앉고 손을 잡고 벽을 허물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언지 모를 삶의 숙연함과 고결함이 있다. 그들의 눈빛엔 슬픔이 아니라 이해가, 그들의 미소엔 아픔이 아니라 용서가 깃들어 있다. 그들은 이제 아프지 않다. 아픔을 품은 채로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눈물조차 상처조차 우리가 우리답게 살게 하는 배움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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