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에는 바짝 말라버린 하루에 소금 한 알 털어 넣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삶이 허공에서 돌덩이처럼 떨어져 내 어깨를 짓눌러 숨조차 들이키기 어려울 때 나는 말없이 소금을 집어 입안에 넣는다. 혀끝에서 짧게 번지는 짠맛이 침에 섞여 잇몸을 스치고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는 동안 꺼져가던 생의 불씨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소금 한 알이 위장에 닿는 데 걸리는 그 몇 초의 시간만으로 나는 오늘을 버텨야 할 이유를 다시 붙잡는다.
사람들은 무미한 날에 소금을 찾는다고 말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허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 때문에 소금을 찾는다. 너무 많은 생각과 기억이 한꺼번에 부딪혀 마음의 저수지가 넘쳐흐를 때 나는 가장 작은 알갱이 하나를 꺼낸다. 삶이 과도하게 졸아붙어 타들어갈 때 타는 냄새가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고 긁히는 소리가 내 안쪽을 할퀼 때 짭짤한 맛 하나가 혼란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감정의 결을 다시 정렬한다.
짠맛은 밋밋함을 채우는 간이 아니다. 짠맛은 무너진 감정의 구조를 다시 세우는 힘이다. 혀끝에 처음 닿는 찌릿한 접촉이 뒤엉킨 슬픔과 분노와 체념과 후회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낸다. 소금 한 알이 물에 녹아 형태를 잃어가는 것처럼 내 마음도 동시에 가라앉고 정리된다. 혼탁하던 감정의 물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얕은 바닥을 드러낸다. 아주 작은 알갱이 하나가 내면의 숲에 길을 낸다.
짠맛은 기억의 문을 여는 자물쇠이기도 하다. 겨울 바람이 바다에서 실어오던 소금기. 식었던 국물 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생명의 향. 어린 날의 어느 밤 누군가 건네던 따끈한 국물에 숨어 있던 온기. 짠맛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체온이고 오래된 순간들의 미세한 숨결이다. 그래서 짭짤한 맛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금은 늘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가 짓지도 않은 외로움 앞에서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상처들 앞에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큰 산이 길을 막아설 때 나는 소금 한 알을 삼키고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풀려버린 끈을 당기는 단순한 동작에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소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 위장에 닿는 동안 나는 오늘도 넘어야 한다고 내 안의 어둠에게 말한다. 짠맛이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살아남을 결심을 굳힌다.
짭짤한 맛은 작은 불씨다. 불꽃은 약하지만 꺼지지 않는다. 소금이 스며드는 순간 미약하게 흔들리던 생의 의지가 다시 치켜올라 작은 빛을 만든다. 타다 남은 재 속에서 깜빡거리는 불씨처럼 삶도 다시 살아난다. 그 불씨는 요란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지만 지탱력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짠맛은 마음의 중심을 되찾게 한다. 달콤함은 위로처럼 스며들고 매운맛은 흔들리듯 도발하지만 짠맛은 정신을 붙잡아 하나의 축을 만든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이 나를 삼켜 흔들어 놓을 때 짭짤한 맛은 나를 원점으로 끌어당긴다. 하루의 무게로 흔들리던 균형이 소금 한 점에 의해 다시 잡힌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곳에서 시작된다.
짠맛은 상처의 본질을 닮았다. 처음 닿으면 따갑지만 시간이 지나면 살을 재생시키듯 짠맛은 갈라진 마음의 틈에 스며들어 천천히 내부의 결을 회복시킨다. 내 마음의 금과 흉터 사이로 스며들어 나를 붙이고 잇고 다시 하나의 구조로 만든다. 나는 그 작은 회복의 힘을 수없이 겪었다. 그 힘 덕에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삶의 산맥은 여전히 앞에 펼쳐져 있고 어떤 산은 여전히 높으며 어떤 골짜기는 여전히 깊다. 그러나 나는 소금이라는 가장 작은 의식으로 수많은 계절을 지나왔다. 보이지 않던 길도 결국 발끝 아래에서 드러났고 기울어지던 경사도 끝내 나의 걸음을 버티며 낮아졌다. 소금 한알의 시간은 번번이 나를 끌어올렸고 나는 그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짭짤한 맛은 조용하지만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간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하루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도 소금 한 알은 생의 마지막 불빛을 다시 밝혀준다. 짠맛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 있는 몸을 감각한다. 가슴 안쪽에서 아주 작은 비늘 같은 빛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 깨어남은 언제나 소금 한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