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당신과 나를 위해
장인은 나무를 고를 때 흠을 그 나무의 약점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흠을 오래 바라보고 손끝으로 더듬는다. 어디가 패였는지 어느 방향으로 금이 갔는지 어떤 계절에 생긴 상처인지 천천히 읽어낸다. 그 흠은 작품을 망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작품만의 결을 만들어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장인은 흠 없는 나무를 찾지 않는다. 흠을 견뎌낸 나무에서만 나는 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간의 상처는 너무 하대된다. 조금만 금이 가도 감추라 하고 깊게 패이면 잊어버리라 하고 아직 아물지 않은 자리 위에 억지로 웃음을 덧칠하라고 한다. 사람의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약점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데에는 익숙해도 상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유난히 서툴다. 그래서 사람은 상처를 숨기다가 더 무너지고 상처를 지우려다가 더 찢어지고 상처를 외면하다가 더 고독해진다.
누가 다른 이의 상처에 이름을 매길 수 있겠는가. 누가 다른 이의 상처에 값을 매길 수 있겠는가. 상처는 그 사람의 시간이고 기억이고 밤이며 생존의 증거다. 어떤 상처는 어린 시절의 울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어떤 상처는 사랑의 어긋남에서 터져 나오고 어떤 상처는 세상이 씌운 폭력의 잔해로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상처를 너무 쉽게 재단한다. 나보다 작은 상처 나보다 깊지 않은 상처 나보다 사소한 상처라고 각자의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 그러나 상처에 경중이 어디 있는가. 상처는 비교되는 순간 모욕이 된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같은 상처를 직면하게 된다. 마치 서로의 흉터가 서로를 알아보듯 말 없이도 덜컹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왜 그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오래 묻어둔 방 하나가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낡은 냄새와 오래된 울음이 흘러나온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보고 어둠은 어둠의 온도를 기억한다. 그래서 어떤 만남은 이상할 만큼 빠르게 깊어진다. 경계가 풀리고 오래 닫혀있던 마음이 잠시 숨을 내쉰다.
그러나 같은 상처가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상처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린다. 잊은 줄 알았던 눈물이 갑자기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오래 굳어 있던 결이 다시 뜨겁게 욱신거린다. 친밀함과 고통이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의 진실만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내가 견딘 어둠을 누군가도 견뎌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처의 무게는 조용히 나눠진다.
상처는 원래 혼자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아프다. 마음은 고립될수록 날카로워지고 외로울수록 오해에 민감해진다. 그러나 같은 결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면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지만 방향을 바꾼다. 나를 무너뜨리던 자리에서 나를 설명하는 자리로 나를 고립시키던 자리에서 나를 이해하게 하는 자리로 상처는 타인을 통해 비로소 언어를 얻게 된다.
나는 오래도록 내 상처를 잘못 다뤘다. 덮으려 했고 숨기려 했고 잊으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처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처럼 상처는 문질러야 닳는다. 오래 쓰다듬고 오래 마주 보고 오래 견디면서만 그 결이 부드러워진다. 상처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낡아빠질 때까지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상처의 숙성이고 인간의 성숙이다.
장인은 상처 있는 나무를 귀하게 여긴다. 시간이 만든 파임은 자연이 준 문양이고 비바람을 견딘 흔적은 그 나무가 살아온 증거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이란 존재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처는 그 사람의 내면의 고유성이다. 그 사람만의 무늬이며 그 사람만의 음색이며 그 사람만의 깊이다. 상처 없는 사람은 평평하지만 상처 있는 사람은 입체적이다. 상처 없는 말은 얇지만 상처 있는 말은 울림이 있다. 상처 없는 영혼은 미끄러지지만 상처 있는 영혼은 오래 머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상처를 미워하지 않는다. 상처 덕분에 나는 사람이 되었다. 상처 덕분에 나는 쓸 수 있게 되었고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상처는 나를 꺾지 않았다. 상처는 나를 만들었다. 살아남은 자에게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표식이고 흉터가 아니라 결이다.
오늘도 나는 내 상처를 문지른다. 아주 오래 아주 느리게 아주 정직하게. 그 결 위에 문장을 쓴다. 문장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지만 상처를 이해하게 한다. 문장은 상처를 없애지 않지만 상처를 다시 살아낼 수 있게 한다. 상처는 내가 살아온 증거이고 문장은 내가 살아갈 증거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나의 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상처가 나를 버리지 않는 것처럼 나도 상처를 버리지 않는다. 상처가 곧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날 누군가가 내 결을 어루만졌을 때 말해줄 것이다. 상처로 인해 나는 내가 되었다고.
그러나 나는 안다. 상처는 끝내 내 편이 되지 못하는 날도 있다는 것을. 때로는 그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다시 피고 다시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날조차 나는 상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적의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날들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상처는 때로 나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기억하게 한다. 나는 그 기억을 선택한다. 아픔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