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식재(一病息災)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병을 얻으면 절제된 삶을 살게 되고, 그 덕에 다른 병까지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값을 서른둘에 치렀다. 정확히 말하면 2005년 5월, 생이 나를 한 번 다른 쪽으로 옮겨 보냈다가 다시 돌려보낸 시간에 그 값을 치렀다.
육체의 병 갑상선암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친절한 설명을 붙여주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 앞에서 무력해졌다. 암이라는 벗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아무도 없는 성체조배실을 찾아 들어가 신께 울부짖듯 항의했다. 왜 하필 나인지, 왜 지금인지, 왜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고 그 질문들은 천장에 부딪혀 다시 나에게로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병보다도 이유 없음에 더 아파하고 있었다. 인간은 고통보다 무의미를 견디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온몸으로 배웠다. 설명되지 않는 시련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고, 작아진 인간은 결국 울부짖는다.
수술 대기실에서 이름이 호명되고 내 침대가 수술실로 끌려가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공포는 예상과 달리 폭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각은 기묘할 만큼 또렷해졌다. 소리는 멀어지고 시간은 늘어났으며, 내 몸은 이미 나를 반쯤 떠나 있었다.
그 찰나에 나는 죽음이란 생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일일 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철학도 종교도 아닌,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명명이었다. 그 이름을 붙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평화가 나를 덮쳤다. 두려움이 사라졌고 저항도 멈췄으며, 대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요가 찾아왔다.
그 평화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암이라는 친구가 다녀간 목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공포로 남지 않았다. 상처는 있었지만 증오도 원망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점점 이 시련을 감사의 영역으로 옮겨 놓게 되었다.
지금도 생의 두려움이 나의 용기를 잠식하려 들 때면, 나는 스무 해 전 그 수술실 앞의 평화로움을 떠올린다. 삶이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나는 이미 한 번 끝을 건너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한다.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함이다.
이제 수술을 받은 지 스무 해 하고도 일곱 달. 나는 이 긴 시간 동안 어떤 정으로 나를 다듬어 왔는지를 묻게 된다. 급하게 회복하려 하지 않았고, 이전의 나로 돌아가려 애쓰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는 쪽을 택했다.
어느 볕 좋은 가을날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 그루의 전나무가 뿌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큰 트럭에 실려 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전나무들은 뿌리조차 감싸지지 않은 채 터덜터덜 옮겨지고 있었고, 그 모습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었다. 생의 기반이 드러난 채 이동하는 존재의 모습은 이상할 만큼 나의 기억을 건드렸다. 예고 없이 찾아온 병, 준비할 틈조차 주지 않고 삶의 자리를 바꾸어 버리던 그 순간이 그대로 겹쳐졌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치욕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연민이기도 했고 분노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해였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이토록 정확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결국 나는 울음을 쏟아내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숨이 고르게 되었고, 그제야 전나무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말이었고,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 너의 삶이 아무런 예후나 예고도 없이 옮겨지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분노스러울지 나는 안다. 그러나 삶의 실존 앞에서 너의 본질은 실존보다 앞서 존재한다. 네가 어디에 심어지든, 너는 여전히 너다. 언젠가 볕 좋은 명당 자리에 다시 우뚝 선 너희를 보게 된다면, 나는 오늘을 기억하며 너희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픔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아픔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루어야 할 감각이라는 것을. 아픔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지만, 아픔 하나가 다른 아픔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자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일병식재라는 말은 그래서 비단 육체의 병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상처 하나가 인간을 절제하게 만들고, 절제는 결국 삶을 단정하게 만든다. 삶이 단정해질수록, 우리는 타인의 아픔 앞에서 불필요한 말 대신 조용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게 된다.
삶이 나에게 매 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단순하다. 지금 괜찮니. 이 질문은 위로처럼 들리기도 하고, 심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나에게 정직해질 수 있게 만드는 질문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저 괜찮은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수없이 되뇌이지만, 마음속의 욕망은 늘 나를 다듬잇돌 위에 올려두고 방망이질을 한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의미 있고 싶고, 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앞으로 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닳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욕망을 없애는 대신, 욕망과 거리를 두는 법을. 더 가지려 애쓰는 손을 잠시 멈추고, 이미 가진 것을 오래 바라보는 법을. 그것이 내가 병 이후에 익힌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나는 다시 묻는다. 올해 나는 어떤 아픔으로 다른 아픔을 돌보았는가. 나는 누구의 곁에 말없이 앉아 있었고, 누구의 고통 앞에서 해결사가 되려 들지 않았는가.
이제 스무 해 하고도 일곱 달 동안 다듬어진 모습으로, 나는 #더세인트 에 매진하려 한다. 뒤돌아보니 모든 시련의 모습은 나를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 준 조각도였고, 그 칼날은 언제나 아팠지만 정확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동안 받았던 많은 사랑을 마땅한 되갚음으로 기워 살아가려 한다. 오십 이후의 나의 삶의 방향과 좌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 크고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숨을 편하게 해주는 자리.
그저 나부끼는 들꽃처럼 살다가, 잘 살아내었노라며 바람에게 인사할 줄 알면 그뿐이다. 삶이 나를 흔들어도 뿌리를 잃지 않고, 떠밀려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존재로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