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견디는 법을 배웠다

by 이 경화


나는 어떤 문장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주어를 앞세우기보다 동사로 버텨온 문장일까. 나는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문장일까. 아니면 읽는 사람이 돌아서다가도 문득 다시 떠올리는 문장일까. 문장은 언제나 나를 닮아 있었다. 내가 숨을 고르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문장도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나를 다독이기 전에는 문장도 늘 나를 재촉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인생을 원고지로 상상해본다. 칸칸이 채워야만 살아 있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고 흰 칸이 생기면 불안해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여백은 포기가 아니라 회복이다. 여백은 게으름이 아니라 숨이다. 그리고 그 숨이 없으면 문장도 사람도 오래 못 간다.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문장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문장은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정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손바닥 온도로 지나간다. 그 순간에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 생겼다는 사실이 어쩌면 내가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질문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질문을 하기도 전에 달려야 했고 달리면서도 더 달릴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불안만이 아니라 변화의 증거다. 몸이 나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살리려고 보내는 신호다.


어떨 때는 진심을 다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좌절이 나란히 나를 내려다본다. 하나의 희열과 하나의 좌절이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나를 지긋이 내려다본다. 그 시선은 차갑지 않다. 그것은 판결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너는 진심을 썼다. 너는 끝까지 해봤다. 그래서 기쁘고 그래서 아프다.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내가 대충 살지 않았다는 증거다. 대충 살면 희열도 좌절도 얕다. 둘 다 얕아서 금방 증발한다. 그런데 나는 자주 깊었다. 내가 깊은 사람이라서라기보다 내가 너무 오래 깊은 곳에서만 살아남는 법을 배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몰아세우며 살아왔다. 너 아니면 안 되라는 말을 기다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다. 그 말이 오면 살아도 된다고 허락받는 것 같았고 그 말이 오면 내가 존재해도 된다고 인정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빨라졌고 더 숨가빠졌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열정이라고 착각했다. 심장이 아파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우겼다. 나는 내 안에서 늘 어떤 심사위원을 키우고 있었다. 그 심사위원은 친절하지 않았다. 기준은 자꾸 높아졌고 통과선은 매번 뒤로 밀렸다. 나는 통과하기 위해 살았고 통과한 뒤에는 더 큰 통과를 위해 다시 나를 밀어붙였다.


내 몸에는 채찍의 기억이 있고 또 같은 곳을 내려친 상처가 있다. 때론 그 상처가 굳어진 자리를 메만지며 살아왔다. 어떤 날은 그 자리를 만지며 내가 아직 아프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어떤 날은 그 자리를 만지며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상처는 부끄러움도 자랑스러움도 아닌 그냥 내 삶의 궤적이었다. 나의 몸이 나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나를 견디는 법을 알아야 했다. 수없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내성이란 것이 생겨났다. 정확히 그것. 그 지점이 나의 평화의 지점 안정의 장소였다.


그 평화는 특별한 사건에서 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찬사에서 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왔다. 내가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내가 나를 혼내는 대신 그냥 손을 얹어 주는 순간. 그때 나는 알았다. 평화는 감정의 천장이 아니라 태도의 바닥이라는 것을. 평화는 반짝이는 선물이 아니라 매일의 자세라는 것을. 평화는 큰 결심이라기보다 작은 허용이라는 것을. 나는 더 빨라지지도 않게 되었고 더 숨가쁘게 되지 않게 되었다. 내 호흡과 나만의 속도를 드디어 찾아낸 지점. 그 지점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사는 법을 알아간다. 알아간다는 말이 좋다. 완성했다가 아니라 알아간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이 있다. 나는 내 안의 폭력을 줄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 안의 작은 독재자를 퇴근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를 끝내면 나를 평가했다. 오늘의 점수는 몇 점이냐. 오늘의 실수는 무엇이냐. 내일은 어떻게 만회할 거냐. 그런데 이제는 하루가 끝나면 묻는다. 오늘의 나는 얼마나 숨을 쉬었냐. 오늘의 나는 누구에게 친절했냐. 오늘의 나는 나에게도 친절했냐. 질문이 바뀌니 삶의 방향도 조금씩 바뀐다.


내가 도착하는 곳은 이 곳일까. 나는 여기가 종착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종착역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종착역보다 환승역이 더 많다. 가끔은 내릴 줄도 알아야 하고 가끔은 갈아탈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 주변을 보면서 시야를 넓혀도 되는 시간이 왔다. 예전의 나는 앞만 봤다. 앞만 보고 달려야 살 수 있었다. 옆을 보면 흔들릴까 봐. 뒤를 보면 무너질까 봐. 위를 보면 울 것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들어도 된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려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 이제는 그 질문을 해도 된다.


내 호흡과 내 맥박 그리고 내가 가장 자유로울 자리를 찾는 여정. 나는 이런 내 삶을 축복한다. 축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낯설 때도 있다. 나는 늘 축복을 남이 주는 것으로 생각했지 내가 나에게 주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나에게 축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축복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축복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는 사실을 축복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주어진 것들을 누리면서 누구보다 나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이 문장은 선언 같지만 사실은 연습장에 가까운 다짐이다. 매일 연습해야 하는 것. 매일 다시 손에 익혀야 하는 것.


그러나 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뜨거운 물음으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다. 안정이란 완전한 고요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아직 물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일지 내 가능성에 패를 던지는 모험도 진행 중이다. 나는 내 안의 가능성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안의 가능성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다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만은 안다. 그 한 가지가 내게는 큰 변화다.


나는 거칠어진 부분을 맨들맨들하게 다듬지는 않는다. 거친 부분은 오히려 거칠어서 나 같다. 투박해진 것도 평화라면 평화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매끈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매끈함은 때로 가면이다. 나는 내 얼굴의 주름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의 흉터를 감추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 흉터가 나를 더 다정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상처는 나를 예민하게도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섬세하게도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투에서 떨림을 알아차리게 했고 누군가의 침묵에서 구조 신호를 알아듣게 했다. 나는 그 감각을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감각이 나를 소진시키지 않게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내 주변 사람들과 이 온도를 나누고 싶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누군가를 굽히지도 누군가를 얼리지도 않는 온도. 빽빽하게 삶을 밀어내지 않고 성글게 거칠게 소박하게 살아내길 바란다. 나는 예전처럼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끌어오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아내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숨구멍이 되면 좋겠다. 내가 숨 쉬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도 숨을 쉬면 좋겠다. 내가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는 것을 누군가도 허락받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렇게 적는다. 나는 내 속도를 찾았다. 나는 내 호흡을 되찾았다. 나는 내가 나를 인정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를 종착역으로 부르지 않는다. 나는 여기를 시작점으로 부른다. 나는 이제 시야를 넓히는 시간에 들어섰다. 나는 내 맥박이 가장 자유로운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축복할 것이다. 나는 감사할 것이다. 나는 누릴 것이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나는 아직 뜨거운 물음을 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모험 중일 것이다. 나는 거친 나를 매끈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거친 결을 가진 채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너는 더 이상 경주마가 아니어도 된다. 너는 “너 아니면 안 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여기 있다. 너는 이미 살아 있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성글게 살자. 조금 거칠게 살자. 조금 소박하게 살자.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너에게 허락해주자. 그 허락이 쌓이면 언젠가 너는 정말 안정될 것이다. 완벽히 안정되지는 않더라도 괜찮다. 흔들리면서도 너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너는 충분히 안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