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살아라 라는 새로운 철학

by 이 경화

옛 어른들의 말씀에서 삶의 지혜를 깨우친다. 그들은 사람의 생을 돌에 비유하기를 좋아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둥글게 둥글게 살아라." 이 말들은 단지 입에 맴도는 격언이 아니라 살아낸 자들이 남긴 고요한 철학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불편했다. 세상의 이치를 따라 무뎌지고 순응하라는 뜻처럼 들렸다. 고집을 꺾고 내 결을 죽이라는 말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모서리를 감춘 적이 없었다. 각을 세우고 살아야 정직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삶은 생각보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깊게 나를 깎아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 쭈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유난히 맨들맨들하고 둥글게 닳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에 감긴 그 차가운 감촉 안에 말없는 생이 담겨 있었다. 겉은 말끔히 닳았지만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 속에 수많은 시간을 견뎌낸 무게가 느껴졌다. 그 돌은 작았지만 내 손 안에서 묵직한 존재였다.

그 돌 앞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굴러왔는가. 얼마나 깎였고 또 얼마나 깎이는 중인가. 그동안 다쳐온 흔적은 내 안에 어떻게 새겨졌는가. 나는 아직도 날을 세운 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돌 하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돌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이었다. 어릴 적 들었던 '둥글게 살아라'는 말이, 그때는 그저 순응과 타협의 말처럼 들렸지만, 이제 와 보니 그것은 생을 오래 살아낸 자만이 남길 수 있는 조용한 권유였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식. 부드럽지만 단단한 삶의 결. 그것이 바로 둥글게 사는 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아, 그 말이 결국 이것이었구나. '둥글게 살아라'는 말이. 너무 늦게 알아들은 말은 가슴 속에 오래 남는다더니, 이제 그 말이 누군가의 충고가 아니라 내 삶의 문장이 되어 있었다.



돌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돌고 돈다. 물길 따라, 계절 따라, 사람 손을 따라 흘러가고 굴러간다. 그리고 그 돌이 다시 누군가의 손에 닿을 때, 그 사람은 또 자기 삶을 비추어본다. 그렇게 돌은 침묵의 거울이 된다.



나도 그렇다.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는 수없이 깎였고 때로는 멈추고 다시 흘러왔다. 내가 흘려보낸 말 한 줄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왔고, 내가 외면했던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았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내어준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다른 이름으로, 다른 모양으로 내게 돌아왔다. 눈빛이 되어 돌아오고, 말없는 위로가 되어 찾아왔다. 주는 것 같지만, 실은 흐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쥐는 것이 아니라 흘리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야만 비로소 사랑은 살아 있게 된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참아낸 고통은 언젠가 큰 희열을 이해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고, 반대로 넘치는 행복은 어느 순간 다시 고요한 슬픔을 불러왔다. 고통이 있어야 기쁨이 깊어졌고, 기쁨이 깊어지면 다시 고통을 감당할 힘이 생겼다. 삶은 그렇게 순환했다.



이제 나는 안다. 흐르지 않는 것은 썩는다. 멈춘 신념은 독선이 되고, 고여 있는 사랑은 집착이 되며, 나누지 않는 재능은 허영이 된다. 흐르지 않는 선의는 자기만족이 되고, 흐르지 않는 지식은 오만이 된다. 그래서 나는 흐르기로 했다. 흐르기 위해 비우고, 비우기 위해 깎인다. 깎이는 것은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새로운 결이 생겨난다.



삶을 돌고 돌다 보니 이제는 안다. 내가 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내가 내어준 것을 억지로 되돌려받으려 하지 않을 때, 세상은 더 깊은 선물로 돌려준다. 마음을 비우면 감각이 열린다. 감각이 열리면 타인의 고통이 들리고, 나의 모서리가 덜 날카로워진다.

그제야 나는 뼛속 깊이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그 말, '둥글게 살아라'는 말은 단지 부드러움에 대한 권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모든 생명이 따라야 할 흐름, '환(還)'의 원리였다. 주고받고, 흐르고 되돌아오는 삶의 자연스러운 법칙. 그 말은 결국 순환의 철학이었다. 둥글게 살아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돌아오는 것만이 다시 살아 있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둥글게 살아라'는 말이 바로 이 모든 환의 이치를 품고 있었음을.




이 돌 하나 앞에서 나는 삶의 많은 것을 배운다. 고요한 것들이 더 많은 말을 한다는 것, 침묵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 또한 그렇게 돌처럼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말이 없어도 삶의 무늬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닿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돌이 되고 싶다. 단단하되 상처를 주지 않고, 둥글되 흐르는 돌. 고요하지만 생명을 품은 돌. 내어준 것을 억지로 되돌려받으려 하지 않고, 지나간 인연들을 미련 없이 흘려보낼 줄 아는 돌. 마침내, 누군가가 나를 마주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



이 사람, 참 둥글게 살아왔구나.



그 말 하나면 족하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삶을 돌고 도는 이유다. 나는 오늘도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해가며 살아간다. 그 말이 나를 다듬고, 그 말이 나를 흐르게 하고 있다. '둥글게 살아라'는 말은 이제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 삶 그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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