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이후의 사용법에 대하여

by 이 경화

오십이 넘으면 눈물이 나지 않을 줄 알았었다. 울 일은 젊을 때 다 울어버렸고 슬픔도 어느 정도는 정리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생에는 나이마다 통과해야 할 감정의 할당량이 정해져 있고 오십이라는 경계를 넘으면 그 몫이 줄어들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래서 오십은 눈물에서 해방되는 나이라고 상상했다. 절반만 눈물이 날 줄 알았다. 오십이라는 경계를 넘으면. 그러나 왠걸. 눈물은 생각보다 끈질겼고 계산을 몰랐다. 나이를 묻지도 않았고 경계 앞에서 멈추지도 않았다. 눈물은 여전히 불쑥 찾아왔고 때로는 이유조차 없이 흘러내렸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울고 난 뒤의 태도였다. 울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게 되었고 눈물이 나를 약하게 만든다고 변명하지 않게 되었다.





눈물이 아직 몸에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차차 잊을 뻔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쉽게 운다. 젊을 때의 눈물이 감정의 분출이었다면 지금의 눈물은 축적된 시간의 누수에 가깝다. 눈물은 마음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오십이 넘어서야 알았다. 목 뒤에 남아 있던 긴장과 어깨에 쌓인 피로 오래 참았던 말들 사이에 눈물은 조용히 고여 있다가 어느 순간 흘러나온다. 몸의 수분이 70프로라고 치면 땀과 눈물로 인생이 다 녹아져 내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살아온 시간만큼 흘려보낸 것들이 있고 그 흘림이 있었기에 아직 여기까지 도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십이 넘으면 사람은 단단해지는 대신 조금 더 잘 흘러내리는 존재가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으로 오십이 넘으면 엄청난 깨달음에 가까이 와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삶의 요령쯤은 손에 쥐고 더 이상 헤매지 않을 줄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 하나쯤은 생겨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왠걸.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배워야 할 것들이 세상에 투성이다.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사람은 여전히 어렵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관계의 방식도 끊임없이 변한다. 오십이 넘어서도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고 새로운 감각에 적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때로는 당황스럽다. 젊을 때보다 더 똑똑해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조급함이 사라져 여유가 생긴 것도 아님을 나는 수시로 코웃음을 치며 깨닫곤 한다. 여전히 마음은 앞서가고 몸은 따라오지 못하며 생각은 많고 결론은 늦다. 다만 예전처럼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 하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오십이 넘으면 사람을 봐도 가슴이 굳어서 그저 그렇지, 상처를 남기고 아무 변명 없이 멀어진 사람도 사람이 다 그렇지 하며 포기가 될 줄 알았다. 관계는 나이를 먹을수록 가벼워지고 이별에도 면역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왠걸. 오십이 넘으니 사람 하나가 떠나고 나면 네 계절 동안이나 회복하느라 애너지를 다 끌어와야 한다. 봄 하나를 건너며 마음을 추슬러야 하고 여름 하나를 지나며 감정을 말려야 하며 가을 하나를 견디며 기억을 정리하고 겨울이 끝나서야 비로소 다시 숨을 고르게 된다. 상처가 깊어진 것이 아니라 회복에 쓰일 힘이 줄어들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관계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졌고 함부로 마음을 내주지 않게 되었다. 이는 냉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오래 쓰기 위해서다.





아직도 모르는 불안한 내일이라는 미래와 관계에서 오는 소모적인 피로에 지쳐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음에 속이 상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고 회복에는 분명한 시간이 필요해졌다. 작은 통증 하나에도 하루의 리듬이 무너지고 예전 같았으면 넘겼을 일들이 이제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오십 이후의 삶은 잘 사는 법보다 덜 다치는 법에 가까워진다. 더 많이 얻기보다는 덜 잃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성공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에 오십이 넘어보니 덜 다치고 덜 아파하고 덜 눈물 흘리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조율에 가깝다. 욕망을 줄이는 대신 호흡을 늘리고 속도를 늦추는 대신 방향을 고르는 일이다. 오십은 끝이 아니라 사용법의 변화다. 몸과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고 관계와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더 이상 무리한 증명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속되는 쪽을 선택하며 오늘도 나는 조금 덜 다치기 위해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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