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으리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작가라는 이름을 달려고 글을 써 온 것은 아니다. 나의 최종 목표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살려고 썼고 남으려고 썼고 견디려고 썼다. 그렇게 문장이 쌓이다 보니 책도 내게 되었다.
“기록”이라는 수업의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할아버지와 함께 달력 뒷면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다가 세 살 때 한글을 모두 깨우쳤다. 할아버지는 내 영특함을 아시고 국어 공책을 열 권 사 놓으시고 나와 매일 글을 적었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 수업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언제나 물음으로 세상을 열어 보여 주셨다. 그러나 언제나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태도가 내 글쓰기의 시작이 되었다. 단정하게 연필을 깎아 나란히 필통에 넣어 주시는 그 태도에서 글을 쓰기 전 어떤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를 배웠고 글을 다 적고 연필을 가지런히 내려놓는 그 눈빛에서 문장을 떠날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매우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습관에 가깝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려 하거나 교훈을 주려 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 그것은 개인적인 깨달음에서 혹은 사유에서 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이 활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계속 글을 쓰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무리 좋은 경험을 해도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은 곧 익숙해진다. 나는 그 익숙함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바라고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고 소비하는 동안 우리의 익숙함은 조금씩 우리 자신을 갉아 먹기 때문이다.
문장은 사람의 기억을 불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낯선 곳에 데려다 놓기도 한다. 문장은 익숙한 것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통해 삶을 다시 낯설게 만든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감정과 풍경과 관계를 한 발짝 떨어져 다시 바라보기 위해서다.
삶으로부터 물러나기 위해 삶으로부터 견자가 되기 위해 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다. 후회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바꾸고 자책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글을 적는다. 부족한 삶이지만 풍요를 경험하기 위해 나눈 것이 별로 없는 하루지만 그 하루를 향유하기 위해 나는 기록한다.
작가는 나의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불러주는 한낱 명찰에 불과하다. 나는 그 명찰을 붙인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하루를 건너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두는 기록자로 남고 싶다. 글은 나를 설명하는 이름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게 하는 거리이고 삶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오늘을 버티고 있는 그대를 위해 적는다. 나처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나를 적어 내려간다. 견딘다는 말이 언제나 숭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대부분의 날은 용기라기보다 관성에 가깝고 선택이라기보다 남아 있는 힘의 문제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통과해 내는 그 미세한 움직임들 속에 삶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그 잔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대단하지 않은 결심과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하루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결을 쉽게 지나치지 않기 위해 문장을 붙잡는다. 기록은 삶을 구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한다. 지나간 날들을 미화하지도 다가올 시간을 약속하지도 않은 채 지금 여기의 감각을 그대로 남겨 둔다.
계속 가다 보면 발자국도 길도 생기리라 믿는다. 그 길이 곧을 필요도 빠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적어 내려간 자리마다 누군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흔적 하나쯤은 남기를 바란다. 그 흔적이 다시 누군가의 하루를 통과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기록은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계속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