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기원

나는 배신을 이렇게 배웠다.

by 이 경화


사람의 첫 경험은 어떤 감정의 원형에 가깝다. 그 감정은 이후의 삶에서 모양을 바꾸며 반복되지만 처음의 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배신이라는 감정을 배웠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감정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다.


아버지는 대학 시절 폐결핵을 앓았었다고 들었다. 치료를 받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선을 보았고 엄마와 결혼을 했다. 그 결혼이 집안의 환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결혼 이후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으로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이 이야기처럼 남아 있다. 나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귀하게 태어나 귀하게 자랐다는 말도 함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늘 과거형이었다. 생후 여섯 달이 되던 해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어떤 죽음은 설명보다 침묵이 먼저 도착한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 친가는 원인을 찾았다. 그 원인은 병도 아니었고 우연도 아니었다. 잘못된 결혼, 잘못 태어난 아이. 그렇게 나는 태어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누군가의 결론이 되었다. 아들의 죽음은 엄마의 선택이었고 나의 존재였다. 그날 이후 엄마와 나는 가족에게서 밀려났다. 버려졌다는 말보다 지워졌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사람의 죽음이 왜 결혼과 출산이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과 출산은 가장 축복받아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의 세계에서는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 그 논리 안에서 엄마와 나는 살아 있는 죄인이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외가로 갔다. 나는 아버지의 집안을 기억하지 못했고 그들 역시 나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엄마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였다. 그 소식은 사실처럼 전달되었고 설명은 없었다. 그 뒤 나는 이모와 단둘이 살았다. 이모는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곁에서 자랐다. 그 삶은 조용했고 적어도 나를 죄인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숨을 고르며 살았다.


열한 살이 되던 봄날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복도 끝에 낯선 부부가 서 있다고 했다.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누구냐고 묻자 그들은 자신들을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라고 소개했다.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말쑥하고 단정한 차림에 윤이 나는 구두와 시계. 나는 그 앞에서 어리둥절한 아이였다.


그 부부는 사흘 내내 학교가 파할 무렵 나를 기다렸다. 교실 문을 나서면 복도 끝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들은 친절했고 나는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첫날 우리는 학교 근처 빵집으로 갔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크림이 든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빵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작은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컵을 집어 들었다.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셨고 조금 뒤에도 또 마셨다. 목이 마른 사람처럼 자꾸 물을 들이켰다. 작은어머니는 그의 손동작을 힐끔 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작은아버지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분명했다. 좋은 이야기부터 하라는 신호였다.


처음 그들이 꺼낸 이야기는 이모였다. 내가 있기 때문에 이모가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작은어머니는 빵을 반으로 가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고 작은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간중간 물을 마셨다. 내가 짐이라는 말, 내가 없어져야 이모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빵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그 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나를 설득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너만 우리를 따라오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말, 이모도 나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볍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 설득은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내가 따라갈 만큼의 설득력은 거기 없었다. 둘째 날에도 우리는 같은 빵집에 앉았다. 작은아버지는 여전히 물을 자주 마셨고 이번에는 컵을 내려놓으며 헛기침을 했다. 작은어머니는 말을 바꾸었다. 유학 이야기를 꺼냈다. 아낌없는 지원, 좋은 학교, 좋은 환경, 좋은 미래. 말을 할수록 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부드러워졌고 작은아버지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니컬하게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답지 않게 조용히. 그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계획이 어긋났다는 얼굴이었다. 작은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작은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눈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그들은 나를 쫓아왔다. 학교가 파했고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모 없이 나는 사흘 내내 그 부부를 만났다. 어른 둘과 아이 하나. 힘의 균형은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그날 그들은 마지막이라며 애원했다. 작은아버지는 물컵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작은어머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라고 하는데 혹시 내가 믿을 만한 증거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작은아버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경화야 정말 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야. 그는 말을 하면서 또다시 물을 마셨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하나도 믿을 수 없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조카가 있는데 어째서 내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날 찾지 않았죠. 그게 바로 내 앞에 계신 분들이 내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아니라는 증거 아닌가요.


그날 이후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특별히 안도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다만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웠다.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느낌보다 무언가에서 빠져나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날의 나는 아직 어렸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은 말로 배신하지 않을 수도 있고 행동으로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장 분명한 배신은 찾지 않음과 외면이라는 것을. 손을 내밀지 않은 시간, 불러야 할 이름을 부르지 않은 침묵, 그 모든 것이 쌓여 하나의 선택이 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관계를 혈연이 아니라 태도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같은 피를 나누고도 평생 나를 모른 척했고 누군가는 아무런 약속 없이도 곁에 남았다. 그 차이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책임의 깊이에서 갈렸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번 나를 버린 선택을 다시 신뢰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이 되었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믿지 않는다는 말은 누군가를 벌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배신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오는 사건이 아니라 오래전에 이미 결정된 태도의 결과라는 것을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배워버렸다. 그래서 이후의 삶에서 나는 사람의 말보다 시간을 보게 되었고 약속보다 반복을 보게 되었고 눈앞의 친절보다 뒤돌아서서도 유지되는 태도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날 빵집에서 마주 앉아 있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아버지가 자꾸만 물을 들이켰던 이유를 작은어머니가 말없이 눈으로 신호를 보냈던 순간의 의미를. 그들은 나를 설득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시도해 보려 했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였던 나는 그 어른들의 불안을 받아 줄 의무가 없었다.



그날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끝내 대답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되지 않은 질문은 언제나 진실 쪽에 더 가깝다는 것도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사람은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에 가장 정확하게 드러난다. 침묵으로, 시선으로, 물컵을 쥔 손의 떨림으로.


돌이켜보면 그날의 선택은 내 삶 전체에 걸쳐 하나의 태도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도 쉽게 끊어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나를 외면한 선택 앞에서는 다시 문을 열지 않는다.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존엄에 대한 감각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배운 가장 단순하고도 오래 가는 윤리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안다. 사람을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신뢰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배신은 언제나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날 열한 살의 나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선 하나를 그었다. 그 선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