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시작된 마음의 기록
몇 년 전까지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달력을 넘기다 빨간 날짜가 몰려 있는 주간을 만나면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하고 부모님을 뵙는다며 분주해졌지만 나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속부터 힘이 빠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과 상실감이 마음 한가운데 엉겨 붙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떼어내지 못한 채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모님 제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일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배추를 씻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재우고 전을 부치며 불 앞에 서 있으면 적어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었다. 곁에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들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차례상을 차릴 때면 늘 숨을 고르게 된다. 접시의 위치를 맞추고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술잔을 채운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자리인데도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처럼 단정해진다. 절을 올리고 향을 피우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부모의 딸이 된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고 상을 내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방금까지는 제사 음식이던 것들이 남은 반찬이 되고 나는 혼자 그 상 앞에 앉는다. 식은 밥을 꼭꼭 씹어 삼키는 동안 눈물이 올라온다. 부모님이 맞은편에 앉아 계신 듯 상상하며 이 반찬 저 반찬을 집어 먹고 국을 삼키는데 목젖이 한 번 올라갔다가 천천히 제자리를 찾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삼키는 일은 늘 먹는 일보다 어렵다. 눈물이 마르는 데도 오래 걸린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다섯 살 경화는 마루 끝에 앉아 있었고 할아버지는 무릎 위에 나를 앉혀 두었다. 마당에서는 장작 타는 냄새가 났고 부엌에서는 된장국이 끓고 있었다. 나는 작은 손으로 할아버지의 수염을 만지며 물었다. “할아버지 밥은 왜 먹어?” 할아버지는 한참을 웃더니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경화야 밥은 배를 채우려고 먹는 게 아니란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려고 사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 할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혼자 먹는 밥은 밥이 아니야. 누군가와 나누면 그게 식구가 되는 거다.” 그리고 내 손에 작은 숟가락을 쥐여 주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밥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감각을 배웠다. 밥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묶는 끈이라는 것을, 어린 나는 설명 없이 몸으로 받아들였다.
세월이 흐르고 부모님을 잃고 난 뒤에도 그 장면은 지워지지 않았다. 남은 차례 음식을 일주일 넘게 먹으며 울던 시간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나를 불렀다. 혼자 삼키는 밥이 너무 오래 계속되자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려고 사는 거야. 그래서 이웃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식탁에 초대해 함께 먹었다. 막상 같이 앉아 밥을 먹고 나니 알게 되었다. 밥은 혼자 먹을 때보다 같이 먹을 때 덜 슬프다는 것을. 그때 내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내 식구였다.
삼 년 전부터는 명절마다 알게 된 신부님과 자립 청소년들을 초대해 밥을 먹고 있다. 부모의 보호 없이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 시설을 나와 홀로 서야 하는 청년들. 처음 그들을 맞이하던 날 나는 괜히 더 많은 음식을 준비했다. 혹시 부족하지 않을까, 혹시 마음이 허전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난로 위에서 옥수수차가 끓고 있었고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와 조심스럽게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젓가락이 오가는 소리와 국을 뜨는 소리와 간간이 터지는 웃음이 거실을 채웠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잘 먹는 모습이 보이면 말없이 그 사람 앞으로 반찬을 밀어 주었다. 그것이 우리만의 사랑이었다. 부모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나와 부모 없이 세상에 놓인 그들의 만남은 동정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졌다. 슬픔이 나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리로 데려다 놓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식탁에서 배웠다.
어느 명절 밤 한 청년이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모여 밥 먹는 게 처음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섯 살 경화로 돌아갔다.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숟가락을 쥐고 있던 그 아이. 밥은 같이 먹으려고 사는 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그릇에 반찬을 올려 주고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배운 방식으로 살아가려 한다. 밥을 나누는 일, 자리를 내어주는 일, 누군가의 허기를 먼저 살피는 일. 부모를 잃은 상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상실이 나를 부엌으로 데려갔고 부엌이 나를 식탁으로 데려갔고 식탁이 나를 사람들 가운데로 데려갔다. 이제는 더 외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상을 차리고 싶다.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고 누군가의 이름으로 채우고 싶다. 그것이 내가 만들어 가는 공간 더 세인트다. 누군가 잠시라도 기대 앉아 숨을 고르고 따뜻한 국 한 숟갈로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곳, 외로움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는 자리.
이 모든 여정은 울면서도 밥을 지었던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무너지면서도 상을 차렸고 견디면서도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흘러간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 되었다. 그 기록이 《견디는 동안 쓰였다 밥상에서 시작된 마음의 기록》에 담겨 있다. 상실과 식은 밥과 만남과 온기가 한 권의 책 속에 고요히 놓여 있다.
돌아보면 나는 거창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빈자리를 비워 두지 않았을 뿐이다. 식은 밥을 혼자 삼키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숟가락을 든다. 다섯 살 경화가 들었던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왔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려고 사는 거야. 그 말은 세월을 건너 내 삶의 문장이 되었고 나는 그 문장 위에서 오늘도 상을 차린다. 그러니 묻는다. 그 모든 눈물과 그 모든 식은 밥과 그 모든 만남이 결국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이 길이 그 얼마나 고마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