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오십 년을 넘게 살았다. 숫자는 담담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계절이 겹쳐 있다. 나는 오래도록 바깥을 향해 살았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떤 자리에서 나를 부르는지 그에 따라 하루의 온도가 달라졌다. 칭찬 한마디에 부풀고 무심한 시선 하나에 작아졌다. 그때는 그것이 사는 일인 줄 알았다. 세상이 나를 증명해 주어야 내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십을 넘기고 보니 가장 오래 나를 지켜보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박수도 오래 남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기억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삶의 무게중심이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느낀다. 기대와 평가 대신 나의 기준과 방향을 세우는 일. 오십 이후의 삶은 확장이 아니라 응축이다.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모여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젊은 날의 여행은 탈출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잠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오십 이후의 여행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같은 길을 다시 걸어도 그 안에서 나를 본다. 제주 바닷길을 걸으며 나는 바다보다 내 마음의 물결을 더 오래 바라본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달라져 있다. 서두르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그저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 여행이 되었다.
사랑도 달라졌다. 젊은 날에는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의 취향과 상처와 가족 이야기를 이해하면 사랑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십 이후의 사랑은 상대를 통해 나를 보는 일이다. 그가 던진 말 한마디에 내가 왜 흔들리는지 그가 침묵할 때 왜 내가 불안해지는지 그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본다. 상대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읽는 일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걸 이제야 배운다.
지혜도 더 이상 남의 말에서만 구하지 않는다. 젊은 날에는 책 속의 문장이 정답처럼 보였다. 유명한 이의 한 문장이 내 인생을 대신 설명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오십 이후에는 내 삶이 더 큰 교과서가 된다. 내가 겪은 실패 하나 내가 견딘 밤 하나가 어떤 명언보다 정확하다. 사소한 경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가르친다. 내 경험이 곧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삶 자체가 교과서가 된다.
나는 한밤중에 혼자 앉아 더 세인트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던 날을 잊지 못한다. 잠든 시간에 불을 켜두고 문장을 맞추고 호흡을 고치며 이 길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던 밤이었다. 누구도 보지 않았고 누구도 박수 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중심이란 박수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나의 결심이 나를 지탱한다는 것을.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연락처가 많을수록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몇 명이면 충분하다. 나를 단정 짓지 않고 훈계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인정하는 설렁한 관계. 조여오는 관계보다 숨을 쉬게 하는 관계가 더 깊고 단단하다.
그리고 만약 오십이 넘었는데 내 인생에 쓴소리를 해 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진짜 자존감은 박수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한 충고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하지만 충고는 나를 자라게 한다. 남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된 말 속에서 나를 연마하는 태도. 그것이 오십 이후의 자세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읽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살아낸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 인생의 깊이는 남이 준 깨달음이 아니라 내가 체득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지식이 쌓이는 것과 지혜가 깊어지는 것은 다르다. 오십 이후에는 양보다 밀도다.
나는 명리에서 갑목을 좋아한다. 들판에 우뚝 선 거목이다. 바람이 불어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거목은 혼자만 서 있지 않는다. 그늘을 만들어 새도 쉬고 짐승도 쉬고 사람도 쉰다. 그러나 그늘을 만든다고 해서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스스로 단단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품을 수 있다. 오십 이후의 삶은 갑목처럼 서는 일이다. 바람은 통과시키되 뿌리는 지키는 일.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내가 걸어온 길을 의심하지 않고 내가 쌓아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일.
돌아보면 오십은 끝이 아니다. 오십은 응축이다. 지난 시간의 실패와 성공이 한 덩어리로 모여 비로소 나라는 나무를 완성하는 시기다. 꽃은 하루아침에 피지 않는다. 오래도록 뿌리가 버텨야 한다. 오십은 그 꽃이 피기 직전의 계절이다. 이제는 중심이 서야 한다. 흔들리더라도 방향까지 바뀌지 않는 사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서 있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거목처럼 그렇게 곧고 단단하게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