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도 운다

by 이 경화

별들과 이야기하며 산 지 오십 년이 넘었다. 나는 외조부의 가르침대로 모든 자연과 이야기 나누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밤 할아버지는 밤하늘을 보며 오늘 우리 경화는 어느 별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 주셨다. 나는 어둠 속 한 점을 가리켰고 그는 그 빛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름이 붙는 순간 별은 사물이 아니라 관계가 되었다. 나는 그때 이미 배웠는지도 모른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불리고 응답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호명 속에서 드러난다.




어떤 존재와 모든 것을 나누는 삶의 시작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열렸다. 나는 자연을 관찰하지 않았다. 자연과 시간을 공유했다. 바람은 지나가는 공기의 이동이 아니라 내 피부 위를 스치는 사건이었고, 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내가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었다. 별빛은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있는 빛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존재는 늘 늦게 도착한다.

내가 정말 슬플 때 나는 밤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낮은 설명하려 들고 밤은 존재하게 한다. 별들과 어깨를 들썩이며 같이 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물이 어른거려 별이 흔들리는 착시와는 다르다. 오히려 나는 느낀다. 내 슬픔은 지금의 것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슬픔은 현재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의 깊은 층에서 올라온다. 어린 날의 결핍, 잊힌 기억, 말하지 못한 상처가 축적되어 어느 순간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슬픔은 늘 무겁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응축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지루해하며 함께 슬퍼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의 슬픔 안에 상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 관계는 단순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에서 이탈한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건 안에 머물러 있는데 그는 이미 다른 시간대로 이동해 있다. 슬픔은 나를 과거로 끌어내리고 그는 현재에 서 있다. 이 시간의 어긋남이 관계의 균열을 만든다.

왜 우리는 같은 슬픔 안에 오래 머물 수 없을까. 어쩌면 그 이유는 슬픔이 시간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흐름을 지연시킨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가도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다. 그러나 다른 이는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시간을 동일하게 경험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각자가 머무는 시간의 깊이는 다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고 어떤 이는 이미 빛 쪽으로 걸어간다.



타인의 슬픔 안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그의 시간 속에 함께 갇히는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웠고 멈춤을 실패로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이 길어질 때 불안을 느낀다. 상대의 시간이 정지해 있을 때 나는 흐르고 있고, 그 흐름의 차이가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슬픔은 단절이 아니라 시간의 심연이다. 깊은 슬픔을 겪는 순간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점으로 겹쳐지는 경험을 한다. 어린 날의 상처가 지금의 사건과 연결되고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이 함께 솟아오른다. 그때 우리는 선형적인 시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선형적인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일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심연 속에 있는 사람과 일상 속에 있는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또 사랑하는가. 왜 다시 누군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아마도 존재는 본래 시간 속에서만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과 미래의 기대가 얽힌 채 살아간다. 타인과 시간을 공유할 때 우리는 단지 감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장한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은 나의 내부에 층을 만든다. 그래서 관계는 사라져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별빛이 늦게 도착하듯 사랑도 늦게 이해된다. 그와 함께 울었던 밤은 그때는 아픔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 흔적이 된다. 슬픔은 지나가면서 의미를 남긴다. 시간은 고통을 삭제하지 않지만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그래서 나는 안다. 지금의 슬픔도 언젠가는 나의 구조를 이루는 일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별들은 자기 소멸을 향해 타오르면서도 오랜 시간 빛을 남긴다. 존재는 사라지면서도 시간을 남긴다. 우리는 같은 슬픔 안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서로의 시간에 깊이 들어간 적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서로의 존재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슬픔은 관계를 끝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를 깊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밤을 기다린다. 밤은 시간이 느려지는 장이다. 별은 오래된 빛으로 나를 비춘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나의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견디며 미래를 상상한다. 슬픔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시간은 나를 다시 흐르게 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별들도 운다. 그러나 그 울음은 시간 속에서 빛으로 변한다. 울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자리로 이동한다. 나는 오늘도 어둠을 올려다보며 나의 슬픔이 지나갈 시간을 믿는다. 별들도 울며 시간을 건너왔듯 나 역시 울며 시간을 건너갈 것이다.



별들도 운다. 그래서 나의 슬픔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조금 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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