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온다는 말

by 마르치아


"언젠가부터 나는 꽃이 피기 전에 먼저 오는 기척들을 더 믿게 되었다."


꽃이 온다는 말은 언뜻 간단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는 시간과 기억 마음과 계절이 뒤섞여 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약속처럼 아무리 긴 겨울이 모든 생명을 감췄다 해도 결국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기척으로 시작되는 움직임이 있다. 나는 그걸 알아채기 위해 매일 창문을 열어둔다. 찬 바람이 들어오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 미세한 변화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마음의 창을 조금 더 열어두게 된다.


그 계절의 시작은 언제나 조용하다. 사람들은 흔히 꽃이 피는 순간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사실 꽃이 오기 전 아직 아무것도 피지 않았지만 무언가 곧 피어날 것만 같은 기운이 감도는 그 시절이 더 각별하다. 가지 끝에 맺힌 보이지 않는 숨결 바람 속에 실린 무명의 향기 아침 햇살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물방울의 반짝임. 이 모든 것은 꽃이 오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모든 작은 증거들은 내 마음 속에서도 하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나는 자주 오래된 인연들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말투 손짓 문득 고개를 돌릴 때 스치는 시선 같은 것들. 세월은 그것들을 잊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가다듬는다. 잊으려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 인연의 기억이라는 걸 나는 꽃이 올 때마다 배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견뎌내고도 내 안에서 여전히 따뜻하고 어떤 사람은 사라졌지만 남긴 향기로 끝내 나를 울리고 간다.


나는 언젠가 라일락이 만발하던 날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꽃은 피기 전에 이미 와 있었던 거야. 그 말이 그땐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꽃은 피기 전에 땅 속에서 가지 속에서 이미 수백 번 도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어난다는 건 단지 그 도착의 마지막 증표였을 뿐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의 준비와 숨겨진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나를 향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몰랐던 건 내가 계절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시간의 무게에 눌려 그 미세한 징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내게 아주 오래 전부터 오고 있었고 나는 그걸 꽃이 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꽃이 온다는 건 단지 봄이라는 이름의 계절이 도착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로 조용히 걸어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의 마음이 어떤 오래된 장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봄은 눈부시고 어떤 봄은 아프다. 피어나는 것들이 전부 반가운 건 아니다. 피어나는 것에는 반드시 스러짐이 따라오기에 나는 이 계절 앞에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아직도 어떤 날에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사람이 다시 오지 않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기다리던 마음만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보다 기다렸던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창을 열어둔다. 그저 꽃이 오는지 누군가의 발자국이 다시 들려오는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계절이 다시 시작되는지를 조용히 감지하기 위해.


꽃은 결국 온다. 아무리 긴 겨울이라도 그 끝에는 반드시 무엇인가가 피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다림과 피어남 그리고 사라짐의 과정을 매년 새롭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꽃이 온다. 그리고 나도 다시 누군가의 마음 속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도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향해 조용히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엔 말보다 더 오래 머무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들은 늘 꽃이 피기 전 가장 아름답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번 봄도 천천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