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다시 쓰게된 날

by 이 경화




어떤 작가님이 자신의 글을 읽어 달라며 보내왔다.


“시간 날 때 읽어봐줘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떨림이 묻어 있었다. 읽어 달라는 부탁은 늘 그렇다. 그것은 평가를 구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상처를 잠시 맡기는 행위다. 나는 파일을 열기 전 잠시 멈췄다. 누군가의 문장을 제대로 읽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책임을 동반한다.


글은 시간의 순서대로 차분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굿의 장면, 남은 딸의 마음이 정석적으로 이어졌다. 잘 쓰인 글이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중심이 흐릿해지는 지점이 보였다. 이 글이 아버지를 위한 글인지, 아니면 남은 이의 회한을 풀기 위한 글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굿이 이야기의 중심축인지, 아니면 감정을 실어 나르는 장치인지도 모호했다. 나는 그 지점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중심을 정하면 글이 더 또렷해질 것 같다고.


그리고 구조를 다시 세워보자고 제안했다. 클라이맥스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심방의 입을 빌려 “미안하다”는 말로 바로 진입해보면 어떠냐고. 굿의 현재 장면과 병원의 차가운 기억을 교차시키고, 원망의 정체가 사실은 그리움이었다는 고백으로 끌어올리면 어떠냐고. 방울 소리로 열고 방울 소리로 닫는 환의 구조를 그려보며 나는 어느새 그 글 안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동행에 가까웠다.


상대는 방어하지 않았다. “재구성 해볼게요.” 그 한 문장이 도착했을 때, 나는 묘한 따뜻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의 문장을 다시 쓰겠다고 말하는 순간은 흔하지 않다. 그것은 고집을 내려놓는 일이고, 동시에 더 깊이 들어가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그 결심의 자리에 내가 잠시 서 있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에 습관처럼 나를 낮췄다. “제가 뭘 알아요.” 그러자 상대가 웃으며 되물었다. “아니 왜 이러셔요?” 그 말은 겸손을 말리는 손길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충분히 잘 보고 있다고, 괜히 작아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내가 이미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책을 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문장을 끝까지 읽어주고, 그 안에서 중심을 찾아주며, 다시 써보겠다는 용기를 건네받는 자리까지 가야 비로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글은 혼자 쓰는 일이지만, 깊어지는 순간은 종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온다.


굿은 망자를 위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산 자의 마음을 풀어주는 장이다. 글 또한 그렇다. 우리는 문장으로 기억을 불러내고, 방울처럼 울리는 단어로 지난 시간을 흔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는 말한다. 다시 써보겠다고. 그 말은 곧 다시 살아보겠다는 말과도 닮아 있다.


그날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나는 단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이 더 뾰족해지도록 돕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중심을 묻고, 구조를 제안하고, 감정을 절제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안의 상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사람이 다시 쓰겠다고 말한 날.


그날은 조용했지만 분명한 전환의 날이었다.


문장이 다시 태어나기로 한 날이었고,


나 역시 조금 더 또렷해진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