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동안 쓰였다
그간 많은 이야기를 써 오면서 버티며 살 수 있었다. 문장은 무너진 나를 일어나게 손을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는 동안 문장은 나를 채근하지 않고 야단치지도 않았다. 나보다 먼저 앞서가지도 그렇다고 뒤쳐지지도 않게 나와 보폭을 맞추며 걸어주었다.
그러던 문장이 길어 지면서 문단이 되고 덩어리지면서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내가 글로 세상을 헤쳐 오는 동안, 그 동안 내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생각은 언어가 되면서 무게를 잃었고, 이름 붙여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않았다. 상처는 설명되는 순간 흉터가 되었고, 흉터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은 기억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을 해석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해석되지 않은 기억은 날것의 고통으로 남지만, 해석된 기억은 하나의 이야기로 자리 잡는다. 이야기가 된 고통은 더 이상 나를 삼키지 못한다. 문장은 나의 고통을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러니 혹여나 실패 하거나, 좌절 하더라도 나는 다시 돌아올 문장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문장을 짚고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났다. 그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재구성이었다. 나는 매번 문장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더 나 자신이 되었다.
사랑을 주다가 상대에게 내 아픈 과거를 들키는 날에도,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는것 같이 외롭고 공허한 밤에도, 믿음을 주었던 상대가 등을 돌렸던 그 날에도 문장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지켜 주었다. 사람은 이해를 멈출 수 있지만 문장은 이해를 시도했다. 사람은 판단으로 나를 재단했지만 문장은 질문으로 나를 남겨두었다. 그 질문이 나를 살게 했다.
나는 오래도록 인간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간극 속에서 인간은 흔들린다. 문장은 그 간극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는 완전하지 않지만 건너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을 세상에 내 놓는 일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꺼워 졌다. 닿는다는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상처가 잠시 같은 공간에 놓이는 일이다. 나의 취약함이 타인의 취약함을 건드리는 일이다. 그 만남은 치유일 수도 있고 상처의 재현일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했다.
내 고독과 상실과 아픔 이것들을 내어 놓는다는 결심은 내 인생의 2막의 커튼과 같았다. 커튼은 단지 장면을 바꾸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빛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다. 무대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 그림자도 함께 생긴다. 나는 빛만을 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림자까지 감당하기로 했다.
읽히는 순간 문장은 해석되고, 해석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독자의 해석 속에서 나는 수많은 모습으로 분열된다. 어떤 이는 나를 강하다고 읽고, 어떤 이는 연약하다고 읽으며, 어떤 이는 과장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읽힘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되는 과정임을 문장을 통해 배운다.
쓰는 일은 나를 구하는 일이었고, 내어놓는 일은 나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확장이다. 나는 나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가 된다.
문장이 닿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침묵의 형태로 우리 곁에 머문다. 어떤 문장은 당장 반응을 얻지만 곧 잊히고, 어떤 문장은 오랜 시간 동안 잠복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삶을 건드린다. 나는 후자를 믿기로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라는 문장을.
문장은 세상을 구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은 인간을 버티게 한다. 버틴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붙들고 사는 일이다. 의미는 거대한 이념이 아니라, 하루를 넘기게 하는 작은 이유다. 나는 내 문장이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
2막의 커튼이 올랐다. 나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흔들리는 채로 서 있기로 한다. 취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실해진다. 진실은 때로 불편하지만, 불편함을 통과한 자리에만 깊이가 남는다.
문장은 나를 지켜주었고 이제 나는 그 문장을 세상에 맡긴다. 닿는다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소멸에 가깝다. 내가 붙들고 있던 언어가 나를 떠나 타인의 삶 속에서 다른 의미로 살아간다. 나는 그 소멸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소멸 속에서만 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장이 닿기까지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기다림은 신뢰의 가장 성숙한 형태다. 당장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태도,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믿는 태도. 나는 나의 상처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고, 나의 고독이 공허하지 않았음을 믿고, 나의 문장이 언젠가 누군가의 가장 어두운 밤에 작은 불빛이 될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다시 쓰게 한다.
다시 견디게 한다.
다시 사랑하게 한다.
문장이 닿기까지, 나는 존재한다.
존재하기 위해 쓴다.
쓰는 동안 나는 살아 있다.